이유라면

by 문성훈

글을 쓴다는 건 할 말이 있어서다.
말이 잠시 존재를 드러내고 걷히는 안개라면 글은 향이 사라져도 거름종이에 찌꺼기를 남기는 커피다.
의미를 싣지않은 말은 짐승의 울음과 다를바 없지만 세상의 불완전함, 원성, 욕망을 담은 글은 가로등 없는 돌길 위에 나뒹구는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한동안 음원사이트를 이용해 음악을 듣다보니 CD플레이어를 쓸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전원을 켰더니 들릴듯 말듯한 낮은 음만 내면서 작동이 안된다.
그러잖아도 읽던 책 속에서 튀어나온 문자들이 허공에서 뒤섞여 맴돌던 참이라 고쳐 볼 심산으로 공구를 찾았다.
딱히 전자제품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언제나처럼 분해해 놓고 골몰하다보면 문제를 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며 나사를 풀었다. 간혹 분해했다 다시 조립하는 것만으로 고쳐지는 수도 있거니와 진공관 라디오처럼 탈이 난 부위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가느다란 희망도 있었다.

나는 오래된 진공관 라디오의 케이스를 열었을 때 나는 그 특유의 - 먼지 냄새인지도 모를- 지난 시간의 향이 좋다.
세련된 블랙의 케이스에 새겨진 Digital이라는 글자에 걸맞게 해체한 CDP 내부에서는 지난 시간의 냄새가 배여있지 않았다.
오래된 진공관 라디오 내부와 공통점이라고는 빈약한 내부에 비해 본체가 너무 크다는 사실 뿐이다.
본체 케이스에 이어 CD를 읽는 장치를 에워싼 속케이스까지 조심스럽게 풀어 헤쳤다.
그렇게 이미 수술대에서 배를 연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하듯 전원을 올렸다. 자신은 없지만 이렇게 이상유무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 오래지않아 낮은 음의 정체도, 어디가 문제인지도 알 수 있었다.
CDP는 바늘이 레코드판의 홈에 새겨진 음을 읽어내듯 CD에 새겨진 신호를 눈알처럼 생긴 레이저 스폿이 빛을 쏘아서 읽는다.
개구리가 파리를 낚아채듯 CD를 삼키고 돌리는 작업까지 하나의 모터가 담당하는데 그 기어가 어느 구간부터는 헛돌고 있었다.
낮은 음은 기어가 헛도는 소리였다.
정확히는 기어 옆구리 홈을 타고 돌던 돌기가 오르막을 타면서 CP를 쳐올려야 레이저 스폿이 빛을 쏠 텐데 오르막 시작지점에서 힘이 부치는 지 자꾸 멈추는게 문제였다. 핀셋으로 그 구간을 지날 수 있도록 가볍게 건드리니 이상없이 돌아간다.
아주 미미한 힘만 주어져도 이상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이 되려 이상했다.
이후로 몇 번을 더 시험 작동해보고 분해할 때의 역순으로 조립을 했다.
혼자만 자랑스러운 작업을 끝내놓고 CD음악을 듣는다. 이미 책은 덮었다. 난시가 더 심해질 지도 모른다.



글을 안쓴 지 꽤 오래됐다. TV를 켜지도 신문을 읽지도 않았다.
글은 계속 썼지만 끝맺지를 못했고, TV는 켜지 않았지만 여러 편의 그다지 의미없는 영화을 봤고, 신문을 읽지는 않았지만 책 속에 파묻혀 있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잠시나마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세상은 모터처럼 멈추지 않지만 헛돌던 기어의 CDP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지 못한다. 그저 윙윙대는 낮은 음만 낼 뿐이다.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려면 실망은 분별없는 선입견에 불과할 뿐이고 실망를 하지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원했는지 발견할 수 없었을 뿐더러 자기 인식의 명확성을 확인할 수 없었으리란 위안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체할 수 없는 세상이니 조립을 할 수는 있을런지, 어쩌면 껍질에 싸여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신호를 읽는 레이져 스폿이 존재하는데 아주 미미한 힘이 부족해서 혹은 맞물려 돌아가야 함에도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해서 따로 헛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를 유치함이라는 악질적이고 모욕적인 감옥으로 만드는 짐승 우두머리들의 새된 선창에 맞춰 자신의 존엄마저 망각한 무지하고 포악한 군중들이 돌리는 시대의 연자방아를 덜컥거리게 하는 쉬이 잠들지 못하는 이들의 선명한 자각만이 어둠 속에 희미한 빛을 들이고 있을 뿐이다.

원추모양의 빛 속에 사금파리처럼 반짝이지만 실은 먼지에 불과한 글들이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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