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식구가 각기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서 흩어져 맞게 된 크리스마스다. 예전에도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를 시큰둥해하는 내 탓에 매년 함께 식사를 하는 정도였지만 올해는 혼자, 아니 망고와 둘이서 보낸다. 아내와 딸은 각기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갔고, 아들은 부산에 있다.
오늘도 사무실에 나왔다. 어제와 오늘. 옆 방 송교수와 같이 보내게 됐다. 어제 저녁 산책하며 "살다가 어떻게 남정네 둘이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는 날이 오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허허"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생각도 식성도 비슷한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행복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한달 전쯤 오래전부터 집필을 겸한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던 그에게 사무실 한 켠을 내어줬다. 평소 진지한 사람이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봤다.
다른 스케쥴이 없으면 점심과, 저녁식사를 둘이서 같이 하고, 산책하고, 대화를 나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박경리선생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우리 둘은 지하철 2구간 정도는 걸어서 식당을 찾아나선다. 요즘은 그가 메뉴와 식당을 물색해 둔다. 시골 출신들이라 식성도 같은데다 걷기를 좋아하는 것까지 닮았다.
오늘 저녁 메뉴는 메밀 국수다. 둘 다 동치미 국수를 시켰고, 만두를 곁들였다. 식사를 기다리는데 그가 물었다 "어떤 생선을 좋아하세요?" "놀래미나 볼락요. 어릴적에는 낚시만 드리우면 잡히던 고기들인데 요즘은 귀해졌더군요. 양식이 안된다고... 교수님은?" " '금풍생이'라고...여수부터 벌교 바다 제 고향 그 쪽에서는 너무 흔했던 고기인데, 얼마전에 어머니를 찾아뵈니 오랜만에 시장에서 봤다고 구워주시더군요. '금풍생이'를 '샛서방 고기'라고도 부릅니다" "하하핫 알겠습니다. 샛서방에게만 챙겨먹일만큼 맛있다는 뜻이겠군요" "하하 맞습니다" 식사가 나왔다. 나름 서울에서 맛볼 수 있는 메밀 국수치고는 괜찮았다. 다만 동치미의 단맛이 강해 아쉬웠다. 산책삼아 걸었다. "어떠셨어요?" "네 괜찮던데요. 근데 동치미 국물이 좀 달더군요. 요즘 사람들 입맛에 맞춰서 그런거겠죠. 뭐" "네. 저도요. 엿이나 식혜의 단맛과 사탕이나 초코렛의 단맛은 다르니까요" "하핫 그래서 우리가 엿을 찾는거죠" 각자 방에서 일을 보다가 커피타임을 가질 때는 늘 냉장고에서 창평 쌀엿을 꺼내 먹는다. 직원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커피를 내리고 역시 엿을 꺼내 놓고 잠시 대화를 나눴다. "예전에는 흔했던 것들이 귀해지고 예전에는 귀하게 대접받던 것들이 흔해지는 세상입니다" "그러게요. 음식부터 입고 쓰는 모든 것들이 그렇죠. 아마 다시 회귀하는 것도 같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에서 본 내용인데.... 원시 부족을 연구하던 인류학자가 그 부족 추장을 대도시로 초청을 했답니다. 그렇게 현대문명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구경시켜 줬죠. 값비싼 대리석과 돌, 최고급 자재로 지은 그들이 사는 집을 보여줬다지요. 그리고 다시 부족에게 돌아온 그에게 부족민들이 물었습니다 '그들은 어디서 살더냐'고.... 그랬더니 추장 왈 '우리가 사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던데... 집도 그렇고...'라고 말했답니다" 우리 도시의 현대인들이 최고급 주택이라고하는 집들은 콘크리크 덩어리가 아니다. 돌과 나무 천연소재를 이용해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질감과 물성을 살린다. 그 부족 사람들 역시 흙과 돌 주변의 자연환경에서 얻은 흔하디 흔한 자재로 집을 지었으니 그 추장 눈에는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미래를 향해 간다지만 잊혀졌던 오래된 과거의 동굴로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