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 만나 22년째 이어지는 관계가 그리 흔하지는 않다. 큰 아이가 아직 뱃 속에 있을 때 산모체조하던 아내들의 남편으로 만나 호형호제하며 지금에 이른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부모임보다는 남편끼리 아내끼리 만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어제는 남편들의 송년 모임이 있었다. 그들 중 나와 양사장, 그리고 한의사인 이원장은 동갑으로 모임에서 맏형이다. 이원장이 음주 전 나눠 준 '공진단'의 위력이었던지 술자리는 4차까지 이어졌다. 나를 '가슴 따뜻한 좌파'로 부르는 양사장은 요즘 헬스에 푹 빠졌다. 탄탄해진 가슴근육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도 아내와의 격돌에서 한번만이라도 꺾어보는 게 소원인 사람이다. 딸 둘인 이 원장은 여성계에서 공로패를 왜 안주는지 궁금하다. 아기때부터 끔찍히 딸 둘을 챙기고 그 둘이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아내까지 세 여자를 받들어 모신다. 우리끼리는 '노예의 삶'이라고 놀리는데 사람좋은 이원장이 그나마 '집사'로서의 불만을 토로하는 자리도 이 모임이다.
다들 이제 대입의 조바심을 덜었는데 양사장만이 늘그막에 아들을 봐서 이제 겨우 중학생이다. 그는 '술김'이라고 우기고, 우리는 '사랑'이라고 놀렸던 게 어제같은데 벌써 그리됐다. 등산을 좋아하는 그가 며칠 뒤 그 아들을 동반하고 '안나푸르나'를 오른다고 했다. 그리 힘겹지는 않을 베이스캠프까지라고 한다. 아내에게 구박받고 내 편인 자식은 없지만 우리끼리라도 서로 위안하면서 잘 버티자면서 마지막 잔을 부딪치고 헤어졌다. 나는 버스로 두 구간 거리라서 걸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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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불 덮은 아랫목에 밥사발을 묻어두고 지아비를 기다리는 시대는 이미 저물었는데 이 시대의 아비로, 지아비로 살아가는 삶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장작을 패서 군불을 때고, 새벽 논에 물꼬를 트러가는 아비의 뒷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새끼인들 아비의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이며, 세상의 척도가 돈다발 높이로 가늠되는 시대이니 지어미의 존경은 어디서 우러날까.
젖을 물릴 수 없는 수컷의 한계요 사냥술을 몸소 가르칠 수 없는 아비의 탄식이다.
말없음으로, 몰아쉬는 가쁜 숨으로 늦게 떨군 새끼에게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거치른 삶의 돌밭을 몸으로 보여줄 ㅇㅇ이의 안나푸르나행에 박수를 보낸다. 잘 다녀와라. 무리는 하지 말고...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산을 잘 탄다는 말은 들은 바없으니.... 건강하게 돌아와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