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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30. 2019

평수 2

인테리어 에세이

그녀의 삶을 읽고 자료를 뒤졌더니 10년 전 다큐멘터리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구준표 머리를 해달란다. 한껏 멋을 낼 나이라서인지 요구사항이 많다. 그래도 녀석의 머리칼를 다듬는 그녀의 손길은 정성스럽다.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스스럼없이 퍼지고 까불대는게 그 또래답다. 오늘 학교에서 어땠는지 누구가 또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았는지 그녀가 묻는다. 모녀간의 대화인들 이리 다정스러울까.

고등학교를 자퇴한 두 녀석의 방통고 입학식을 찾은 그녀가 자신보다 넓은 녀석의 등짝을 때리며 "이번에는 꼭 졸업해야 된다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전화벨이 울린다. 말썽꾸러기가 또 친구 돈을 뺏었단다. 경찰서 복도에서 형사에게 선처를 호소하던 그녀는 결국 울면서 돌아간다. 그녀가 굳이 PC방을 가겠다는 또 다른 녀석들은 붙들어 방에 재운다. 다행히 훈방된 말썽꾸러기도 돌아왔다. 집이 아니라 그녀에게로 왔다.
이 아이들 모두는 그녀가 배가 아닌 가슴으로 품은 자식들이다.

그녀가 낳은 세 딸은 이 언니, 오빠들과 라면 한 솥을 끓여먹으면서도 해맑기만 하다.
영상 속 막내딸은 아직 어려서인지 언니, 오빠들이 같이 놀아줘서 마냥 행복하다. 중2 맏딸은 속이 깊다. 엄마의 어렵던 어린시절을 듣고서 오빠들만 챙겨주는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둘째가 학교 갈 채비를 서두른다. 아마 숨겨 둔 언니의 빵을 오빠들에게 나눠줘서 언니를 속상하게 했다는 아이인가 보다. 이 아이가 지금은 유명한 걸그룹 멤버가 됐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에게 내몰려 소매치기까지 해야했던 8살 아이가 200명 아이를 둔 엄마가 됐다. 영상을 보는 내내 그녀의 붕대감은 오른 손목이 자꾸 신경 쓰였다. 쉴 틈이 없었으리라. 몸이 성하다면 오히려 이상했다.

그녀가 세든 이 2층 마용실이 20평이라고 했다. 하루에 족히 십여명의 아이가 먹고 뒹굴고 잠들기도 하는 공간이다.
문짝을 대신한 커텐을 열어 제끼는 방이 두 칸 그 중 한 칸은 가출한 아이들을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
얇은 합판 칸막이로 오픈된 주방과 카운터, 미용 체어가 3, 샴푸체어 1, 대기용 테이블과 의자 여럿, 파마 기계, 트레이 거기에 긴 쇼파, 연탄 난로까지 있다.
유명 브랜드 헤어샆을 여러번 설계했던 나로서도 힘든 난제를 너무도 쉽게 풀어놓았다.

동선이 너무도 매끄럽다. 가방을 맨 아이들이 수없이 드나들어도 어느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이 없다. 동선의 의미가 무색하다.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난로가에 둘러앉아 라면을 끓여먹고 그녀는 손님의 머리 손질을 하는데도 여유로운 공간이다.
200명이 거쳐간 20평의 공간. 생활의 터전인 미용실이자 네 식구의 집이면서 10여명의 아이들이 뒹구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넓이는 20평이다.

우리가 흔히 이사를 하게되면 주변에서는 다들 몇 평이냐고 묻는다. 사무실을 구하거나 매장을 구할 때에도 상주 인원에 맞춰 몇 평의 공간을 구할지 산정하고 그 평수가 가격을 결정한다.
평수는 면적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평(坪)이라는 단위를 쓰지않는다. 국제적인 단위인 미터법에 따라 헤베(m²)를 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에게 익숙한 단위는 '평'이다.
1평은 약 3.3m²이고 1m²는 약 0.303평이다. 여전히 헤베(m²)는 회사에 갓 입사하며 처음 입어 본 슈트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새롭게 도입된 도로명 주소가 어색한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나 평 수를 알게되면 대략적인 면적을 머릿속으로 가늠한다. 중대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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