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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an 01. 2020

평수 3

인테리어 에세이

마른 체구에 깐깐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의 옷차림이나 행동거지는 동네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젊은 노인에 가까웠다.
누구라도 그를 세계 유수의 전자제품회사에 소재를 공급하는 꽤 이름있는 일본 기업의 ceo라고 짐작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래 전 나는 정부가 외국의 첨단기업을 유치하기위해 부지를 제공하고 몇 년간 세제 헤택을 주는 산업단지 시찰에 그와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통역은 한국 지사장을 맡게 될 한국인이 맡았다.
아직은 잡풀이 무성하고 펜스만 쳐진 공장부지 한 모서리에서 그가 뭔가 던지는 시늉을 몇번 하더니 통역과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웃었다. 궁금해서 내가 물었다.
"무슨 얘기십니까?"
"아... 공장 부지 면적이 OOO정도 되겠다고 하시네요. 제가 그 정도가 맞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아까..."
"네. 회장님이 골프를 무척 좋아하고 오래하셨거든요. 그래서 거리를 대략 짐작해서..."
그러니까 내가 무언가 던지는 시늉이라고 생각했던 동작은 골프의 스윙이었던 것이다. 당시 골프를 치지 않았던 나로서는 언뜻 이해가 안가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후 골프를 치게 되고 꽤 잘 하게되면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풀렸다. 골프는 거리와 방향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지해서 원하는 지점에 공을 떨어뜨리느냐가 관건인 스포츠다. 그는 오랜 골프 경력으로 거리를 추정하고 면적을 산출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던 나대지가 아닌 이미 들어선 건물이거나 그 건물 안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 내 결론은 다르다. 즉 익숙한 골프장과 비슷한 환경이었기에 면적 산출이 비교적 정확했다는 말이다. 그 역시도 창문, 벽, 바닥, 가구, 천장의 조명등 시야를 가로막거나 어지럽히는 요소가 있었다면 면적 산출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머물거나 살아가는 공간의 크기를 가늠하는 면적의 단위인 m²는 m × m 다. 1m²는 1m × 1m인 것이다.
그렇다면 1평에 해당하는 3.3m²는 정방형일때 1.8m × 1.8m정도가 되고 1m폭의 복도라면 3.3m를 간 거리까지가 1평이 된다. 그런데 이런 형태가 혼재되어있는 공간이라면, 혹은 다각형이거나 장방형의 공간이라면 누구라도 추정하기 어렵게 된다. 더구나 용도에 따라 칸칸이 나눠지거나 가구나 집기로 들어 차 있다면 더욱 혼란스럽다.

한 때 한국 최고의 매매가를 기록하던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의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몇 번 진행했었다. 형태는 각기 달랐지만 70평에 가까운 공간이었는데 방이 3~4, 거실, 화장실2 그리고 제법 긴 베란다는 동일했다. 처음으로 이 아파트 현장에서 작업을 하게 된 사람들은 예상보다 넓지 않다는데 다들 놀란다.
처음으로 빈 땅에 집을 짓는 주인들은 건축과정에서 대개 두 번 정도의 색다른 경험을 갖게된다. 도면이 확정되고  땅에 구획이 그려진 걸 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각각의 공간들이 모두 작다고 느끼는 것이 첫 번째고, 나중에 벽과 천장으로 마감되었을 때는 이전보다 커졌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두 번째다.
또다른 경우도 있다. 몇 십년만에 학창시절의 -초등학교라면 더 극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운동장과 교실을 방문하게되면 자신의 기억보다는 훨씬 작은 공간이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다.

어린 시절을 보낸 20평의 - 그것도 절반정도가 온전히 내 활동 무대였던- 고향집이 70평의 고급 아파트보다 넓게만 느껴지고, 영업장과 주거를 충족하며 십여명의 아이들이 드나드는 20평의 미용실은 그리 불편해 보이지 않는데 오히려 수백명의 아이들로 가득차고도 남았을 추억 속의 학교 운동장과 교실은 예전보다 쪼그라들었다. 벽으로 가로 막혀있지 않은 상태보다 트여있을 때의 면적이 오히려 작게만 느껴진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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