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Feb 13. 2020

삶에도 디테일이 있다-1

무슨 생뚱맞은 얘기인가하겠지만 작가 한강이 한국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번역의 중요성이 부각됐었다.

대상이 비영어권 작품이니 수상과 상금 역시 작가와 번역가에게 동시에 한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 역시 작가이긴하지만 한국어 공부를 6년정도 그것도 외국에서 배운게 전부였는데 맨부커 수상을 계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맨부커 수상 직후 국내 학계와 문학계를 중심으로 채식주의자의 영문 번역 오류에 대한 지적이 있어 왔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강은 몇몇 실수가 있음에도 작품 전달에 결정적 장애물은 안된다는 견해를 밝혔고 데버러 스미스 역시 오역된 60여개 수정목록을 해외 출판사에 전달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떠올린 건 이번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 때문이다.
한국 감독으로서 자본주의의 속성과 미국 지역주의 한계를 지적받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된데는 그동안 마켓팅과 캠페인에서 통역을 맡은 샤론 최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샤론 최 역시 데버러 스미스처럼 전문 통역사가 아닌 영화학도이자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 지망생이지만 몇가지 점에서 다른 지점이 엿보인다.

우선 데버러 스미스는 서툰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기본 어휘에서조차 오류가 많았지만 한국 국적으로 미국에서 공부를 한 샤론 최는  한국과 미국 문화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데다 영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적절한 어휘 선택과 뛰어난 언어감각으로 봉감독이 말하고자하는 말을 맥락을 잘 짚었다.

평소 달변이자 유머와 속어를 적절이 구사하는 봉감독의 통역사로는 더할나위없는 선택이었다.
또한 직역이 아닌 의역을 구사하면서도 놓치지 말하야 하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았는데 이는 채식주의자 번역 논란에서 있었던 '번역의 창조성'과는 확연히 다른 그녀만의 재능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중요한 외국 영화 감독이나 배우의 통역을 전담하다시피하는 동생이 있다.
인터스텔라의 크리스토퍼 놀란, 톰 크루즈, 브레트 피트등의 통역을 맡았는데 미국에서 자라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외국계 컨설팅회사를 다니다 지금은 동시통역을 하고 있다.
그 인사 중 누군가의 한국 방문 일정이 잡히면 두터운 관련자료를 들고다니며 읽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샤론 최의 동영상을 보다가 생각이 나서 통화를 했다. 그의 의견이 궁금하기도 했다.

"어떻든?"
"잘하던데요. 딱 제 스타일입니다. 그렇잖아도 그 인터뷰 영상들 보느라 어젯밤 잠 설쳤어요"

"그쪽 영역에서도 다 그렇게 인정할 정도니?"
"뭐 말들은 많죠.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잘못 통역한거다. 저걸 빠트렸다. 항상 그렇죠 뭐, 아무래도 전문 통역사들이니 일종의 질투도 있을테고 제가 보기에는 아주 훌륭합니다"

"어떤 면이 그렇던데?"
"통역이란게 결국은 남의 말을 옮기는 거잖아요. 언어구사도 탁월해야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더 중요한 건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읽어 전달하는 건데 탁월합니다. 게다가 그 감성까지 놓치지 않던데요"

"그래? 그 정도야?"
"예. 가령 'dciehk dnvornfldk skdnwu'란 말을 '며늊ㅎㅇㅍㅁㅅㅈ'라고 통역하잖아요. 직역하면 아니거든요. 그런데 영어문화권에서는 그게 더 잘된 표현이에요"

"그렇구나. 너도 잘하잖아 임마"
"하하핫 형이 그렇게 봐주시니까... 그런데 정말 프로던데요"
"왜? 뭐가?"
"제가 보기에 봉준호감독이 리스닝이 되니까 자기가 한 말이 어떻게 통역되는지를 알아요. 그래서 빠트린 부분이 있다싶으면 다시 말해요. 그런데 샤론 최가 그 부분을 또 통역하지 않아요. 재차 강조하는데도요. 자기 고집과 자신감이 있는거죠.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사족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전문 통역사는 그렇게 잘 못해요."

"그나저나 언제 보냐?"
"이번 주까지는 바빠서 못뵙고 다음주 형보러 가려구요"
"그래 와라"
"네. 형 알죠? 제가 형 모시고 나가는게 소원인거"
"GR.... 그러다 늙어 죽겠다"
"아니라니까요. 정말 잘되셔서 제가 통역으로 모시고 나갈 날만 기다립니다"
"아... 알았다. 암튼 다음 주 보자"
"넵"

ㆍㆍ

재작년 늦봄쯤에 제주도의 있는 이 동생의 처가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동생의 처는 외동딸인데 장인 장모 두분은 서울집과 제주도 집을 오가며 생활하신다고 했다.
제주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지대에 있었는데 예전에는그 터가 귤농장이었고 했다. 1,000평 대지에 들어선 중정이 잘 다듬어진, 상공에서보면 앵무조개처럼 둥글게 말린 형상의 특이한 주택이었다. 높은 지대의 뒷 마당에는 베어내지 않은 귤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현관에 들어서면 길게 이어진 계단의 우측으로 방들이, 왼쪽에는 중정이펼쳐져 있었다.
 
고저차를 이용한 건물인데 그렇게 계단을 밟고 올라가다보면 마침내 큰 거실이 나타나고 거실 우측으로는 다시 오픈된 원목계단으로 오를 수 있는 복층식으로 틔인 작은 거실과 방이 보였다.
큰 거실을 지나쳐 주방이 있는데 우리는 주로 큰 거실과 주방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동선이 한 방향으로 또아리 틀듯 돌게 된데는 중정을 어디서건 볼 수 있게하겠다는 디자이너나 주인의 의지가 있었을 것이고 거실이 계단을 따라 배치된 방보다 한 층은 더 높은 위치에 자리 잡게 된 연유도 중정과 바다가 함께 펼쳐지는 전망을 담을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매거진의 이전글 평수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