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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11. 2020

조금은 다른 관람평

기생충

또 개 이야기로 시작한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했던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의 쾌거을 이룬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은 이미 유명하다.
영화 '마더'의 마지막 부분, 관광버스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어머니들이 춤을 추는 장면은 역광으로 촬영하기 위해 남북으로 쭉 뻗은 도로를 섭외하고, 이곳을 달리는 버스 창문을 태양광선이 수평으로 관통하는 날짜를 계산한 결과다.
기생충에서 잠시 비친 손석희의 대역 장면은 그의 앉아있는 특유의 자세 즉. 팔꿈치가 걸쳐진, 어깨의 각도등를 연구해서 촬영했다.

정작 내 주목을 끌었던 부분은 영화 기생충에서 주요한 영화적 장치였던  '냄새'에 관해서 한 말이다.
" 우리 사회에서 사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움직이는 동선을 보면 사실 많이 안 겹쳐요... 가는 식당도 다르고 비행기를 타도 예를 들어 퍼스트클래스와 이코노미 클래스사 있고 항상 공간적으로 나누어지죠. 그런 식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있을만큼 되게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침범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언뜻 연결성이 없어보이는 냄새와 공간 또는 냄새와 동선을 자연스럽게 영화 플롯의 날줄 씨줄로 엮었으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시각과 청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영화라는 장르에 후각이라는 감각을 더해 입체적 예술로 완성도를 높이는 시도를 했고 멋지게 성공시켰다.

누군가는 부자와 가난한 자는 동선과 공간이 나뉘어져 있다는 그의 시각에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이고 실제 상황이다.
땅을 밟는 신체의 말단에 덧씌어진 신발을 보자. 그것이 구두든 운동화든 일단 홈이 파진 고무창 바닥이라면 최소한 부자가 아니다. 진짜 부자의 값비싼 구두 밑창은 오래전부터 가죽으로 만들어져 왔다.
카펫이나 대리석이 아닌 맨 땅을 밟거나 뛰다 미끄러질 일이 없어서다.

이런 격차는 자연스럽게 동선으로 이어져 부자가 머물거나 걷는 동선은 되도록 짧고 다른 사람과 섞여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되어 있다.
동선은 사람의 움직임이 남기는 흔적이고 방향이다.
언젠가 은퇴한 부자들을 위한 실버타운을 돌아 본 적이 있다. 빼어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타운이 들어서 있는데 그 아래쪽 편의시설과는 긴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어 있었다. 실내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으려면 인터폰으로 전기 카트를 부르면 언제든 직원이 달려왔다. 원하기만 한다면 신발이 닳을 이유도 걸을 필요도 없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이 "어떻게 저렇게 완벽한 집을 골랐느냐"며 격찬한 로케이션의 장소는 사실 셋트장이었다.
반지하방, 취객이 노상방뇨를 일삼는 재개발 동네가 모두 영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지하 벙커가 있는 넓은 저택은 물론이다.
수작으로 평가받는 영화에서는 항상 언급되는 바이지만 '공간은 또 하나의 배우'임에 분명하다.

오랫동안 반지하는 건축법의 규제를 피해  건물의 용적율 (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 연면적의 비율)을 높이려는 수단으로 쓰여져 왔다.
굳이 넓은 대지를 확보해서 건폐율(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이 남아돌 정도로 쾌적한 건축물을 짓는 경우에는 시도할 이유가 없다.
반지하층을 지하층으로 인정받아야 용적율에 합산이 안되기 때문에 반지하의 층고는 낮을 수 밖에 없고 창은 천장에 붙어 겨울 빛이 들어올 정도 밖에 안된다.
이렇게 좁은 대지에 건축면적을 늘릴 수는 있지만 상하수도, 가스, 전기, 전화등 도시기반시설을 이용하는데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기생충에서 기택의 반지하 화장실이 보여주는 모습은 무척 사실적이다.
땅밑에 묻힌 상하수도 배관보다는 위에 있어야하기에 계단을 밟고 올라간 위치에 양변기가 놓여있다. 요즘에는 지하 집수정을 만들고 펌프를 이용해 배출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전기를 사용하는데다 모터 소음은 어느정도 감내해야 한다.
방바닥보다 높은데 앉혀진 변기는 그 존재만으로 반지하의 핍진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닿을 수 있는 양변기 그 위에 자리잡은 창문을 통해 노상방뇨하는 사내의 다리만 보이는 땅바닥이 그제서야 드러난다.

가난하건 부자건 스마트폰은 누구에게나 쥐어져 있지만 변기와 같은 위치에서 잡히는 외이파이 수신이 상징하는 영화 속 웃픈 장면은 드라이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21세기 현실의 모습이다.

계단은 인간의 상승 욕구를 표현하기도 하는 건축적 언어다.
오르막길에 있는 박사장네 집은 대문의 위치부터가 심상치 않다. 계단을 밟고 올라 서야 한다.
그리고서도 집 현관에 도착하기까지 내리막은 없다. 엉겹결에 개인교사가 된 우식은 태양빛에  눈부셔하며 현관에 이르지만 박사장네 식구의 방은 다시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2층이다.

봉준호 감독은 공간의 배치, 동선으로도 영화를 통해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박사장네가 집을 비웠다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기택네 식구가 몸을 숨긴 거실 탁자의 사이즈가 그들에게 지상층에서 허락된 공간 넓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보인다.
박사장집 셋트는 대지가 1천818㎡(550평), 1층 건물 면적만 661㎡(200평)로 지어졌다.
실제 상황이면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1종주거지역이라고 가정한다면 건폐율이 50%이하이니 1층은 법규에 맞춰져 있고(661/1818=36%), 용적율이 100%라서 2층은 1천157㎡(1818-661=1157) 즉 350평까지 지어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온갖 수단으로 반지하를 벗어나려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지하로 되돌아 가는 가난한 자의 굴레를 벗겨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평생 영화 한가지만을 생각하고 꿈까지 영화로 꾼 봉준호감독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면서 그의 성공은 인성도 한 몫 했음을 말하고 싶다.
"감개무량하다. 봉감독이 칸에서 이런 문자을 보내주셨다. '그대와 미술팀 덕분에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오!'라고 순간 울컥하더라. 서울에서 첫 촬영을 마치고 봉감독님과 배우들이 모였을 떄 감독님이 나를 왈칵 끌어앉았다. 남자 품에 안겨 본 건 아버지 이래 그가 처음이다" 미술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공간이 제 2의 배우라면 제 3의 배우는 빵을 먹던 기택이 손가락으로 튕겨내는 꼽등이가 아닐까. 꼽등이까지 연출팀이 키우고 스케쥴 관리까지 했다니 곤충의 연기지도까지 하는 감독이 봉준호다.

이렇게까지 입에 침이 닳도록 칭찬을 했는데 그가 혹시 앞으로 받게 될 수많은 아카데미 부상중 크루즈 12박 투어권정도는 내게 주지 않을까 망상에 젖어본다.

#기생충후기는_안쓴다_했는데...

#기어이_쓰게_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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