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약

by 문성훈

'노키즈 존(No Kids Zone)' 논란이 식을 줄을 모른다. 요즘처럼 아이들이 귀한 시대에 게다가 아이들이라면 눈이 하트꼴로 바뀌는 내 경우야 뉘집 애들이든 뭔들 이쁘지 않게냐만 조용한 시간을 보내려고 소중한 시간을 내서 찾은 장소에서 소란과 소음을 일으키는 아이들을 보는 눈길이 다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예전에는 이런 사회적 논란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도 노키즈존이 있었는데 아마 미리 단속하던 어른들 때문 아니었을까?

지금은 구매를 일으키는 주고객으로 재래시장이나 마트에서 환영받는 아이들이지만 옛날 내가 어릴 적 5일장이나 재래시장에서는 심심찮게 "애들은 가라"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노키즈 존'이 있었다.
대개 그 외침의 진원지는 장돌뱅이라고 불리는 떠돌이 약장수거나 뱀장수를 에워싼 무리다.

말이 떠돌이 약장수였지 실은 돌팔이였음이 분명한데 호기심이 유난히 충만했던 나는 기를 쓰고 어른들 무리에 머리를 내밀고 버티다가 기어이 꿀밤을 맞고서야 물러나곤 했다.
개 목줄을 한 원숭이의 재주나 약장수의 마술도 신기했지만 그 장돌뱅이 약장수가 들려주는 다른 동네 소식과 허리띠로 뱀을 대신한 사설이 기가막히게 재미있어서다. 서울 지하철 노선을 쉴틈없이 속사포처럼 늘어놓는 어느 개그맨 빰치게 사설을 늘어놓다가도 애들이 드문드문 보면 여지없이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대개 그 대목은 아이들이 듣고 있기에는 너무 이른 음담패설 직전이기도 했지만, 본론에 들어서서 그 '만병통치약'을 나눠주며 팔려고 할 즈음일 때가 많았다. 돈이 안되니 빠지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노인 류마티스 관절염부터 시집살이하는 며느리의 홧병까지 씻은듯이 낫게해준다는 그 환상적인 신약은 대개 조그만 약병에 담긴 물약일 때가 많았다.
어린 눈에도 누가 살까 싶었지만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사셨다. 가끔 점퍼 차림의 아저씨들이
"한번 줘 보슈. 이거 진짜 낫긴 하는거요?"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 약장사 특유의 달변으로 어느 마을 누가 마시고 나았다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증거를 내밀거나 조수가 한 병 꿀꺽 삼키고서 각목으로 머리나 허벅지를 때려 분지르는 차력을 보여줬는데 희안하게 어른한테도 그 방법이 잘 통했다. 도무지 홧병이나 위장병 치료하고는 무관해 보이는데도 말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는 군중 속에 있던 바람잡이 아저씨들의 역할이 컸다. 차력 쇼에 가장 먼저 박수를 치는 사람도 그들이었고, 의심하며 영업을 방해하는 어른들을 조용히 뒤로 끌어내는 사람들도 그들이었다. 어린 내가 그 아저씨들이 한 패란걸 어떻게 알았냐면 언젠가 장이 서는 날 한 여인숙에서 나오는 걸 봐서다.

아무튼 어른이 된 지금. 5일장이라고는 산간 벽지나 시골을 찾아야 하는 이 시대에도 그런 장돌뱅이 약장수들이 전 국민을 상대로 아무런 거리낌없이 만병통치약을 팔고 있어 놀랍다.
다른 동네는 물론 다른 나라의 소식을 제 입맛대로 바꿔서 들려주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며 주로 노인네들을 상대로 약을 판다. 그래도 옛날 그 만병통치약은 병을 치료했다는 말은 못들었어도 탈이라고 해봐야 고작 설사였는데, 지금의 약은 사리분별을 못하게하고 정신 착란까지 일으키는데다 폭력까지 유발시키는데도 정부도 어쩌지 못하니 안타깝다.
그 약에 중독된 노인네들이 자주 출몰한다는 장소가 사대문 안 광화문 광장이다. 그 약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이 연일 생산하고 있다. 장사가 잘되는지 빌딩도 크다.

옛날 장돌뱅이 약장수들이 그립다. 그 아저씨들은 그래도 양심에 걸리는지 "애들은 가라"라고 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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