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훑어보는 신문과 뉴스를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눈 여겨 볼 기사 한 토막, 생각하게 하는 논설 한 한 편을 찾기 힘들다.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한때 개천에서 용이 되는 사다리 역할을 했던 고시가 있었다. 사법,행정,외무 거기에 덜 알려졌지만 입법도 있다. 공공기관은 그렇다치고 민간부문에서는 언론고시라고도 불릴만큼 어려운 언론사 입사과정이 존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물론 매체가 다양해지고 그 수도 이전과 비교하지 못할 만큼 많아졌으니 기자라고 다같은 기자는 아닌 세상이 됐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기자는 그래도 한국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주요 일간지와 공중파 방송 매체에 속한 언론인이다.
그들의 현 주소는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대변하듯 평가 절하되고 지성인으로 평가되던 호시절은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이는 일제하에서 그리고 군사독재 시절 핍박 속에서 지켜냈던 선배 언론인의 자긍심을 버리고, 소속사의 기관지 직원노릇을 자처한 일선 기자들과 데스크의 책임이 크다. 나는 기자들에게 언론인의 사명이나 저널리즘을 요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 성실하기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램을 전할 뿐이다.
"가지 않으면 모른다"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플리처상을 세 번이나 받은 기자겸 컬럼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한 말이다. 53년 생이니 칠순이 멀지 않았는데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를 하고 있다. 그가 200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기자가 물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powerful) 칼럼니스트라는 명성을 듣는 기분이 어떠냐"고 그는 “오 마이 갓. 누가 그래요?”(Oh my god. Who called me that?)라며 “나는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서서 와우(wow)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와우’라고 외치는 순간 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돼요. ‘나 토머스 프리드먼은 올림포스 산에서 하계에 불벼락을 내리는 제우스야.’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나는 한국 사정을 취재하기 위해 14시간이나 날아서 한국까지 오지 않게 되지요. 나는 철저히 땅에 발을 딛고 살아요(I stay very grounded). 내 모토는 ‘가지 않으면 모른다’입니다.” 그러면서 프리드먼은 지난 3주 동안 그의 발길이 닿은 세계의 도시를 소개했다. 워싱턴, 파리, 다보스, 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 암만, 카타르, 뉴델리, 방갈로르, 워싱턴, 푀닉스, 서울. 그는 자신에게 파워나 영향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탄탄한 현장주의에 바탕을 두고 쓴 칼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칼럼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발 그 현장에 없었다고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가 전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는데는 뉴욕타임즈의 컬럼니스트로 보좌관의 보필까지 받는 그의 명성이 뒷받침되었겠지만 기자생활 초기 베이루트 파견시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는 파견 당시 취재로 퓰리처상까지 받는다. 나는 한국의 기자들이 세계가 아닌 국내조차도 현장 취재를 하지않고 사무실에 앉아 기사를 작성하는 걸 직접 두 번 경험했다.
나는 한국의 기자들에게 프리드먼처럼 취재한 내용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지식으로 가공하는 탁월한 지적 능력까지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 받아 적거나 전화 한 통화로 기사화하지말고 직접 취재라도 했으면 하는 것이고, 양심과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기사를 써주길 원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에서 기자는 자취를 감추고, 기레기만 나뒹굴 날이 멀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