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의 미학

운동

by 문성훈

독서 모임을 통해 알게된 젊은이가 있다. 대학원에 재학중인데 언젠가는 그의 가족 초대를 받아 용인에 있는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직 서울 인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만큼 나지막한 산과 논 그리고 저수지를 끼고 있는 전원주택이었다.
너른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오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그의 아버지가 문득
"그런데 이 녀석은 여기서 계속 다니고 싶다고 하네요. 너무 먼 데... "라고 했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신촌에 있다. 조만간 기숙사로 들어갈 계획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저라도 여기에서 다니고 싶기는 합니다. 경치도 공기도 좋아서..."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뒷산과 저수지를 돌면 4km정도 되는데 좀 더 긴 코스를 잡을 수도 있어 뛰기에 너무 좋거든요" 그가 설명을 보탰다.
그는 런닝 크루 멤버기도 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뛴다. 이전에 '책읽기의 즐거움'과 '러너즈 하이(Runner's high)'를 비교하며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운동을 통한 깨달음과 책을 읽은 후의 도취감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언제나 옳다.

'콘델렉타리 시비 condelectari sibi'는 13세기 스코틀랜드의 철학자가 '운동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의지'를 예찬한 말이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건강을 자신하던 젊은 날에도 환절기만 되면 알러지 비염을 앓았다. 원인이 꽃가루든 떨어진 기온이든 나를 괴롭히는 정도는 덜하고 더하지 않았다. 단골이 된 내가 의사에게 물었다.
"근본적인 치료는 안될까요?"
"어쩔 수 없습니다. 심해지면 오셔야죠. 이 시기만 넘기면 되니까"

그 지긋지긋한 비염없이 환절기를 무사히 넘긴 몇 년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회사 근처 피트니스 센터를 다니던 때였다. 정작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해 단풍소식이 들릴 때쯤 재채기를 하는 네게 아내가 일깨워 줬다
"당신 예전에 운동할 때는 비염이 없었는데..."
그제서야 다시 집근처 헬스장 다니기 시작했지만 2년을 채우지 못했다. 혼자서 하는 운동이고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에다 저녁 약속까지 겹치면 핑계거리에 기대기 일쑤였다.

두번째 시도로 무언가 제약이 있고 구속력를 가져야 되겠다싶어 P/T(Personal Training)을 받았다.
녹초가 될민큼 강도가 높은 운동량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식단이었다. 토종 입맛인 내게 간이 덜 된듯한 닭가슴살과 칼로리 계산은 고역이었다.
닭 노린내에 헛구역질이 날 즈음 그만두고 헬스장비를 하나 둘 사들여 거실을 채웠다. 지금은 런닝 머신이 옷걸이로 유용하게 쓰이고 바벨은 문을 열어 고정시키는 다른 역할을 찾았다. 운동에서 기쁨은 커녕 나약한 의지만 확인한 셈이 됐다.

마지막 대안으로 찾은 운동은 걷기다.
이제 4년이 되어가니 가장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만둘 가능성이 거의 없다.
시작은 단순했다.
지속적이면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15층 집까지 올라갈 때는 계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지만 차츰 부담스럽지 않게 됐다.
그렇게 나름의 성취감을 느낄 때쯤 운동을 운동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습관에서 찾아야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라톤 풀코스를 뛰며 러너즈 하이(Runner's high)까지 느끼고 싶다면 모르겠지만 모든 일이 무리를 해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가끔 점심식사 후 하던 산책을 매일 하면서 거리를 늘렸다. 다행히 사무실에서 한강변이 가까워 가능한 일이다. 일부러 사무실에서 버스 정류장 한 두구간 정도 거리에 있는 식당을 찾는 일도 잦아졌다.
작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내 차를 처분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게되니 자연스럽게 걷는 일도 거리도 늘어났다. 시간이 허락되면 역시 목적지 한 두거장 전에 미리 내려 걷는다. 아내 차가 있어도 내가 이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앞 선 자동차 꽁무니만 쫓으며 만나는 세상과 느긋한 햇살을 받으며 바라보는 창 밖 세상은 확연히 다르다.
거스를 수 없는 세월에 녹아 들 허벅지 근육량을 유지시키고 이전에는 몰랐던 익숙했던 거리의 사소한 변화와 이웃의 낮은 삶에 감동하는 순간도 걷기에 가능하다.

걷기는 익히 알려진 유산소 운동으로의 효과보다 뇌를 건강하게 해 준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빠르게 걸으면 인지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피질이 두터워지는데 런닝 머신보다 주변을 살피고 계단을 오르내리면 더 효과적이다.
이렇게 6개월이상 꾸준히 운동을 하게되면 언어중추를 담당하는 측두엽과 전두엽이 발달하고 BDNF라는 뇌신경 영양인자가 분비되어 뇌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이미 몸으로 체득한 바를 과학이 검증해주니 나로서는 이보다 더 확실하고 믿음직한 운동이 없다.

출퇴근하며 봐 두었던 지하철 역 근처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철 따라 바뀌는 한강변의 민낯을 마주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몸과 뇌를 건강까지 챙겨주는 걷기는 내가 선택한 최고, 최선의 운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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