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문장때문에 샀습니다" 그가 책 한권을 건넨다. 펼쳐 준 페이지에는 이미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3가지 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3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다.' 63p <난문쾌답>
"이전에 제게 그런 말씀 하신 적 있으시잖습니까. 디자인 서적 한 권에서 사진 한 장 겨우 건지고, 책 한 권을 다 읽고도 남는 글 한 줄이 없다고... 비슷한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그런 말을 한 것도 같다. 항상 느끼던 아쉬움이고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아마 또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평소 내가 '사이 간(間)'이 들어간 인간(人間),시간(時間) 그리고 공간(空間) 이 세가지가 관심사이고 그 중 제일은 공간(空間)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었으니까...
한때 집과 회사에서 받아보던 8부의 일간지를 모두 끊은지도 오래됐다. 그나마 중앙일보를 가장 마지막까지 구독했는데 정치,사회면보다 기획기사나 경제면에서 볼만한 기사가 좀 있어서였다. 그렇게 종이신문이 끊고 난 뒤에는 주로 포털 사이트를 통해 주요 일간지와 온라인 매체의 기사를 읽고있다. 이런 방식으로 뉴스를 접하는데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중에서 최근 이슈에만 집중되고 정작 중요지만 사소하게 다뤄지는 외신이나 단신, 연재, 기획 기사를 놓치는 경우가 가장 아쉬웠다.
한동안 이런 단점을 채워주고 살얼음 낀 세상의 그늘진 곳을 비춰주는 카메라 앵글이 내게는 SNS와 온라인매체, 유튜브 채널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마저 변질되고 사(私)가 끼니 차츰 전에 없던 부작용이 늘어나고 폐해가 하나 둘씩 드러난다.
어느 SNS와 매체도 예외일 수는 없다. 처음 시작하던 4년 전만 해도 감히 나로서는 넘보지 못할 지식과 미래를 당겨보는 정보가 넘쳐났고 시사에 대한 깊고 넓은 시각을 만날 수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일지라도 시(詩)가 되는 문장이 있었고, 경구(警句)가 되는 깨우침이 있었다. 신랄한 정치 비판에서마저 풍자와 해학이 담겨있었고, 날선 공방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사막화되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메마르고 거치른 일방적인 주장과 선동만 가득하다. 이미 알려진 기사와 남의 생각을 옮겨다 퍼나르는데만 열중하고 온전한 자기 생각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밥벌이 하느라 영업과 광고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지만 볼썽 사나운 자기 자랑은 나르시시스트가 아닌가 의심하게 하고, 설익은 시사 평론은 얕은 바닥을 드러낼 뿐이다.
뿌리 깊은 지식과 길게 뻗은 정보 그리고 싱그러운 일상의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은 머지않아 사막화될 수 밖에 없다. 풍자와 해학, 유머와 위트라는 단비 대신 비난과 욕설, 과장과 가식이라는 산성비를 맞고는 이끼조차 자라지 못한다. 나무가 없으면 모래바람을 막아줄 수 없는 것처럼 휘몰아치는 거짓과 욕망의 광풍을 막아 줄 나무가 시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기다려지고 글쓴이를 믿고 보는 글이 많아지기를, 미소가 감돌거나 가끔은 젖은 눈을 훔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처럼 작은 자갈 무더기에서 사금을 캐는 낙마저 사라지는 때가 올까봐 불안해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