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호텔과 빌딩의 네온사인 그 사이를 휘젓는 자동차 불빛이 화려한 반쪽과 밤하늘에 촘촘이 박힌 별처럼 빛나는 작은 불빛의 무리가 그것이다. 그 작은 불빛 속에는 호텔 세탁물을 처리하고 세계 각국 음식의 뒷처리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고달팠던 하루가 뉘어져 있다.
더 멀리 불빛을 쫓아 본들 어둠 뿐이다. 라스베이거스는 네바다 사막에 세워진 부자연스럽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라서다. 네바다 사막과 라스베이거스는 고작 자동차로 30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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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정식 국명은 '타이 왕국'이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이 다스리는 지구 상에 얼마 남지 않은 국가다.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지만 국왕은 이 나라에서 살아있는 '신'이며 '절대 권력자'다.
헌법이 20차례나 개정되고 쿠테타가 일상이어서 뉴스에도 다뤄지 않는 나라이니 다른 나라 사람의 시선이나 인터넷 서핑으로 얻는 정보가 아닌 태국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의 얘기가 내게는 더 살아있는 지식이고 실질적인 정보다.
태국 권력의 세 축은 왕족, 군부 그리고 경찰을 비롯한 관료 조직이다. 양원제의 상원의원을 군부가 지명할 만큼 군부는 막강하다. 그런데 군부의 수장은 국왕이 임명한다. 쿠테타를 일으켜도 국왕이 인정하지 않으면 실패다. 그런데 처벌 받는 경우는 없다. 군부 쿠테타로 축출당해 망명한 화교출신의 탁신 총리는 여전히 국민(특히 빈민)에게 인기가 있다. 30밧(1200원)만 내면되는 의료보험제를 실시해 민심을 샀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하면 정치경력이 없는 막내여동생 잉락도 총리가 됐다. 잉락 역시 쌀 수매가를 높여주는 친서민정책으로 민심을 얻었지만 부정 축재와 권력 남용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마지막 대법원 판결 전날 배를 타고 탈출해서 잘 살고 있다. 그녀의 탈출을 태국 군부와 정보기관이 몰랐을리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내가 갔던 한 최고급 골프장의 주인은 탁신 총리의 운전수였다. 탁신의 소유라는 뜻이다.
태국의 정치는 역사적으로 그래왔다. 극단으로 몰지 않고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다. 서로 물고 물려있으면서 적당히 부패해서 공생하는 관계다. 쿠테타를 일으켰다 실패한 군 장교들도 다음을 기약하며 부대로 복귀하면 그만이다.
길거리 노점상마저 담벼락에 사진을 걸어 놓을만큼 태국인의 국왕에 대한 존경심과 지지는 대단하다. 선대 국왕인 푸미폰은 대왕으로 추앙되는 선군으로 그 권위가 막강했다. 그런데 현 국왕인 마하 국왕은 난봉꾼에 성격마저 괴팍한 인물이다. 아버지 푸미폰 국왕은 조강지처 한명이었지만 마하는 알려진 것만 네 명의 부인과 첩이 있다. 외사촌 여동생, 여배우, 비서, 승무원 출신 근위대장 출신의 왕비와 육군 소장 출신 후궁으로 직업도 나이도 다양하다. 첫째 부인은 여배우 때문에 이혼당했고 여배우 출신 둘째 부인은 다섯 아이와 영국으로 도망갔으며 비서였던 평민출신 세째 부인은 쫒겨나 아들마저 빼앗기고 길거리 빈민으로 산다. 33세 연하의 현역 육군 소장인 후궁도 모든 지위를 박탈당했다.
비슷한 세대 태국 미인들 중에 그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은 여성이 없다는 말이 있을만큼 개차반인데다 사치스런 인물인데 그런 얘기를 입에 담았다간 최소 3년인 철창행을 못면한다. 영민한 인물도 아니어서 실질적인 정치는 국민의 존경을 받는 여동생인 미혼의 둘째 공주가 맡아서 한다. 결정의 배후에는 원로원격인 추밀원이 있다.
그런데도 태국 왕실은 여전히 막강하고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전세계 최고의 재산을 가진 왕실인데다 국내 굴지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고 막강한 정치 권력까지 가졌다. 방콕 시내 요지의 빈 땅은 어김없이 왕실 소유고, 태국이 망하기 전에는 번성할 수 밖에 없는 얼음 생산은 왕실의 독점 사업이다. 게다가 태국은 산유국이다. 기름값은 우리나라의 절반에 못미치고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강대국이다. 아직 베트남이 따라오려면 멀었다.
태국은 역사적으로 일본과 인연이 깊고 긴밀한 관계를 지금까지도 유지하는 대표적인 친일국가다. 일본과 얽히고 섞인 애증의 역사가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당시의 조선과도 연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