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화장실 문을 닫고 나오며 짜증을 낸다. "또 그래 씨~" "또 피우니? 엘리베이터에 써 붙여도 안되고... 어쩜 좋지?" 아내가 안방 화장실을 쓰라고 한다.
아래층 주민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다. 층간소음이든 실내흡연이든 사려 깊지않고 이기적인 이웃을 만나면 불편하고 불쾌하다. 개인간에도 그럴진대 반인륜적이고 비상적적인 국가를 가까운 이웃으로 두고 있다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ㆍ
한국에게 일본은 그런 나라다. 역사적으로도 호전적이고 반성조차 하지 않는데 한술 더 떠 아베는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겠다며 개헌에 사활을 건다. 일본 봉건시대 사무라이는 그런 전쟁과 살인을 업으로 삼았던 계급이다. 모시는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던 사무라이를 낭인이라 부른다. 그들이 임진왜란의 선봉에 섰고 민비를 시해했다.
17세기 임진왜란이 끝나고 내전에서도 패해 용도가 없어진 사무라이들이 낭인신세가 되어 네델란드 동인도 회사의 교역선에 몸을 싣고 도착한 나라중 한 곳이 태국이다. 농사를 지을 줄도, 장사를 해 본 적도 없는 낭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칼을 쓰는 일이다. 전쟁 경험과 살육에 길들여진 낭인들은 버마(미얀마)왕조와 전쟁 중이었던 아유타야왕조(태국)의 용병으로 활약하게 된다. 막장인생이 된 전문 살인 집단의 활약은 대단해서 이후 명성과 지위를 얻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그런 전투력과 근성에 위협을 느낀 태국 왕실은 그들을 내치고 그들이 거주하던 일본인 마을을 패쇄하기에 이른다. 태국과 일본은 애증이 교차하는 끈질긴 인연의 시작이다.
진주만을 공격한 일본이 파죽지세로 승전고를 올리던 2차대전 초기. 태국은 최초의 중립 노선을 버리고 일본편에 섰다. 하지만 차츰 전세가 기울어지자 태국은 연합군 편으로 돌아서서 1945년 일본군을 기습공격한다. 마침내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가자 태국은 승전국의 지위를 갖게되고 1946년 유엔에도 가입하지만 다른 나라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이런 국제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따돌림을 의식한 태국은 유엔의 6.25 파병 요청에 미국 다음으로 빠르게 참전한다. 6,326명이 참전해 129명의 전사자, 1139명의 부상자가 나왔지만 6.25전쟁 후 현재까지 소수의 태국군이 유엔군 사령부 소속으로 남아있어 학고한 연합군 지위를 누리게 됐다.
ㆍ
태국에 있는 후배의 차는 기아 카니발이었다. 머무는 동안 그외 단 한 대의 한국차도 보지 못했다. "이거 한국에서 가지고 들어 온거니?" "아뇨 형님. 여기서 샀습니다. 세금이 100%나 돼서 1억 줬습니다." "도로에 온통 도요타구나" "예. 태국에 일본 조립공장을 비롯해서 협력업체가 다 들어와 있거든요. 태국 현지 조립이면 국내차로 취급해서 쌉니다."
태국은 1952년 일본과 관계 회복을 했고 일본은 지금까지도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자동차 조립 공장을 필두로 진출했으니 태국 내 자동차의 90%가 일본산이다. 차량정체도 심한데 한때 태국 정부가 친서민정책을 편다면서 자동차세 전액 감면에 50개월에 달하는 장기할부를 시행한 탓이 크다.
현재까지도 일본의 대태국 투자규모는 태국 국내외 투자액의 절반에 달하고 거주하는 일본인은 20만명에 이른다. 한국 교민은 2만명이 채 안되니 10배다. 중국 화교는 태국 전체 인구의 14%인데다 혼혈까지 포함하면 40%다. 필리핀의 많은 고속도로는 일본이 무상으로 건설했다. 자동차를 수출하려니 도로망을 확충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골치 아픈 이웃이 동네 사람들을 모두 제 편으로 끌어들이면 정작 억울하고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 후회하게 된다. 같은 입헌 군주제 국가여서이기도 하겠지만 애증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일본은 적극적으로 태국을 공략했고 호감도를 끌어올려 친일국가로 만들었다. 미국에 편중된 외교 역량을 다변화하려는 현 정부의 외교 전략이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기업은 그런 면에서 정부보다 한 발 빠른 대응과 뛰어난 정보력을 보인다. 귀국하기 위해 공항을 향하는데 굽어진 고속도로 변에 족히 30M폭은 되어보이는 삼성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엄청 크구나" "그렇지요 형님. 한달에 저 간판 임대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