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그림자 4

by 문성훈

애초에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도 쉽지 않다는 중장비 사업이다. 군 출신인 내가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말렸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차라리 지금은 홀가분하다. 그나마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는 지경까지 몰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고 혼자 떠나온 여행이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그 친구를 떠올린 건 우연이었다.
회사를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갚지 못한 은행대출 독촉전화와 가족의 걱정어린 눈빛을 마주하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잠시라도 머릿 속을 정리하고 긴 한숨이라도 맘껏 내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럼 점에서 국내 어느 곳이건 마음 편할 리 없다.

젊은 시절에는 장교로 위수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었고, 짧은 직장생활과 사업을 하는 동안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중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내 꿈은 별을 다는 것이었다. 육사출신으로 촉망받는 장교로 순탄할 것만 같았던 인생이었는데 한순간에 방향을 틀었다.
굳이 위안하자면 그 시절 미국 웨스트 포인트로 위탁교육을 받던 중에 그 곳에서 이 친구를 만났으니 이렇게 타국 땅을 밟을 수 있게 됐다는 정도다.

시간이 꽤 흘렀어도 잊지 않고 있었다니 고맙고 반가웠다.
하기야 백인들만 우글대는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게 된 동양인이라는 동질감은 남달랐을 수밖에 없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매일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과를 감당하기에도 벅찼었다. 마른 체구에 언제나 놀란듯한 동그란 눈이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그 당시 태국에서 미국에 유학 올 정도면 부잣집이나 고관대작의 자식이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다.

세월이 오래 흘렀고 나를 기억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지만 막상 국내를 벗어나려고 했을 때 떠오른 사람은 그 친구였다.
그동안 연락처는 바뀌지 않았는지 곧 답장이 왔다. 잠시나마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 복잡한 지금의 심경을 털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6시간을 넘게 가뜩이나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꼼짝달짝 못했는데 후덥지근해지는 것이 이제 거의 다 온 모양이다.
답답함을 덜기에 더운 날씨의 동남아는 최적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내친 걸음이고 나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비행기가 덜컥거리더니 마침내 착륙했다. 이제 곧 이 갑갑한 비행기 안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연이어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저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던 승객들이 웅성거린다. 얼핏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라는 영어 방송이 들린 것도 같다.
불안하다. 첫 해외여행인테 시작부터 헝클어지는 것은 아닌지 내심 초조해진다. 태국은 쿠테타도 자주 일어난다는데 그 때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내 방송도 이제는 없다. 손을 가지런히 모은 승무원들과 영문을 모르는 승객들만 서로를 마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보니 창 밖으로 보이는 어느 항공기도 뜨고 내리지 않는다. 비행기 이착륙장도 적막속에 숨을 죽이고 있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하얀 벤츠 서너대가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드물게 벤츠를 봤지만 하얀색 벤츠를 보는 건 처음이다. 그것도 한대가 아니지 않는가.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로 다가오는 게 분명하다.
무슨 일일까?
이윽고 탑승구가 열린다. 여전히 승무원들은 부동자세다. 탑승구로 쏟아지듯 들어 온 사람들은 검정 정장차림의 인이어를 낀 건장한 사내들이다. 보안요원이거나 경호원인게 틀림없다.

앞좌석 퍼스트클라스부터 수색하듯 한사람 한사람 일일이 문답을 주고 받는다. 그 중 한 사내는 앞장서 계속 뭐라고 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왠지 낯익은 발음이다.

"ㅇㅇㅇ~! ㅇㅇㅇ~!"
내 이름이다. 분명 내 이름이 맞다. 이건 또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태국 교민들 사이에 회자되는 비화(秘話)를 기억에 의존해 각색했습니다. 제 얘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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