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런 까만 문짝이, 손잡이가 정겹다. 분명 손잡이가 차가울텐데 따뜻하다.
잠깐 멈칫했다. 긴 우드슬랩 탁자와 탁자들이라 혼자 자리를 차지하기엔 미안해서다. 합석할 요량으로 책장에 다가가 책부터 먼저 훑는다. 누구 집, 어느 카페를 가든지 버릇이다.
책장 가운데 노란 메모가 눈에 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연인이, 부부가 됐고, 아이가 왔고, 가족이 됐다.
어느 소설가가 말했다. "서가에 꽂힌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고... 나는 흑백의 주인장을 알아가는 중이다.
책 한권을 집어들었다. <아랍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제목부터 사뭇 도발적이다. 읽어보지 않은 책이다. 이 카페에 머무는 동안 다 읽어내지 못할만큼 두텁다. 우드슬랩 탁자 한켠에 앉았다.
검정과 하얀색으로 나뉜 체스판 문양 천장이 이 카페가 '흑백'임을, 반들거리는 도끼다시 바닥이 세월을 말한다. 주인장이 메뉴판을 가져다 준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다행히 못알아본다. 나가는 시간까지 그랬으면...
커피와 한조각 쿠키. 그다지 쓰지도 시지도 않은 것이 커피를 잘 모르는 내 입에는 맛나다. 서문을 다 넘길 때쯤 주인장이 다가와 묻는다.
"저.. 혹시 문성..."
'들켰다'..."아 네 맞습니다. 그냥 잠깐..."
"아 몰라봬서..."
"아닙니다. 저는 그저..."
나의 어디를 본들 남이 알아줘야 할 사람인가. 조심조심 도둑질하다 들킨 심정이다.
이제 맘놓고 책을 읽는다. 40몇페이지까지 읽고 덮었다. 재미있다. 기억해뒀다 밀린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찾아 읽어야겠다. 카페에서 차마실 시간을 꽤 벌어놨으니 짧은 시집을 찾았다. 책등 상단에 빨간색깔이 눈에 들어와 뺐다. 이원규시인의 <빨치산 편지>다.
역시 안읽어본 책이다. '그래서 빨간 표식이...' 툭 짤라 펼쳤는데 하필 시 제목이 '빨갱이'다.
무겁다.
다른 페이지를 넘겼다. '그믐밤'이다. 산사람이 된 남편을 그리는 아내의 서간문형식이다.
스마트폰으로 시인의 약력과 최근 근황을 뒤졌다. 남다르다. 처음으로 돌아가 전부를 읽었다. 한 가족의 서사다. 점심이 과하지않았는데 체할 것만 같다. 주위에 사람이 없었다면 눈물 한 웅큼을 떨어뜨렸을런지도 모른다. 시집 한권을 그렇게 폭우 끝 계곡에 쏟아진 바윗덩이를 밟듯 단숨에 들이켰다. 시는 그리 읽는게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출입문 여는 횟수가 잦아지더니 고개를 들이미는 손님들의 좌석 찾는 눈길이 바쁘다.
일어섰다. 2층 미술관으로 가봐야겠다.
"안녕히..."
"제가 제대로..."
바쁜 날 찾아 온 나를 더 미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