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를 보았다

by 문성훈

종이로 만든 배처럼
작은 비구름마저
내겐 위험하지만
또 다시 파도에 춤춘다.
다시 세상이란 바다 위 파도에 춤을 춘다.
내 곁에 늘 그대 있음을


나는 누군가에게 희미한 빛줄기를 보내 줄 등대는 되어 줄 수 있을까? 나침반이 되어 항구로 이끌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남을 도운 사람을 의인이라 부르고, 이름모를 이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기부자를 칭송한다.
하지만 내 곁을 돌아보고 나와 함께 하는 가까운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데는 서툴고 어색해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더 크로스'라는 그룹의 '항해'라는 노래의 가사다.
그들의 대표곡인 'Dont cry' '당신을 위해서'보다 더 의미있는 건 이 노래가 불의의 사고로 생을 포기하려했던 친구를 위해 만든 곡이어서다.

메인 보컬로 초고음역대를 오가던 김혁건에게 닥쳐 온 불행은 나를 비롯한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 온다.
우리는 알 수없는 운명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를 잊으려고 술을 마시기도하고, 종교에 의지해 떨쳐버리려고도 하는 유약한 존재다.
그 또한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인생 항로에 교통 사고라는 파도가 덥쳐 사지마비의 암초에 걸린 난파선에 불과했다.
앉아있을 수도 없었던 그의 바램은 단 하나. "휠체에에 앉을 정도가 되면 나를 강으로 밀어달라" 이런 부탁을 할수 있는 사람은 파트너이자 친구인 시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를 절망의 나락에서, 암초에서 끄집어 올린 사람은 자식을 포기할 수 없었던 부모님이었고, 휠체어를 강으로 밀어주는 대신 그의 성량과 음역대에 맞춘 노래를 만들어 건네준 친구 시하였다.
일반인의 1/4에 불과한 폐활량으로 고음역대는 무리일 수밖에 없는 혁건을 위해 한음, 한음 지푸라기로 새끼 꼬듯 녹음한 노래가 '항해'다. 혁건은 이 동아줄을 움켜잡고 시하라는 두레박을 타고 절망의 깊은 우물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몸이 불편한 친구와 등하교를 함께 하는 어린 학생,
사지마비로 숨쉬기조차 버거운 친구에게 노래를 지어 건네준 친구,
앞을 볼 수 없어 포악해질대로 포악해진 헬렌 케러의 손에 물을 뿌려 언어의 경이로움을 일깨워 준 설리번 선생님,
성폭행으로 실어증에 빠진 어린 마야 안젤루에게 문학의 창을 열어 햇볕을 쪼이게 한 아칸소의 선생님,
소아마비 장애로 두 다리와 오른 손을 못쓰는 장영희 교수를 업고 다니며 불굴의 영문학자겸 수필가로 키운 그녀의 어머니.
나는 그 분들을 진정한 '영웅'이라 부른다.

창고 정리를 하다 언제 사다뒀는지 잊고 있었던 박스안에서 싹을 틔운 양파를 본 적이 있다.
어두운 창고 안. 접힌 박스 틈새의 한 줄기 희미한 빛을 쫓아 한 방향으로 자라난 생명력에 경탄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는 불굴의 의지와 생에 대한 집착이 살아 숨쉰다.
어디선가 새어나올지 모르는 희미한 빛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나에게 묻는다. 나는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줬던 연탄재는 되지 못할 망정 허술한 문짝이라도 되어 누군가에게 빛을 들였던 적이 있었던가.


ㆍㆍ



작가의 이전글방콕의 그림자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