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좌우할 만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결심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보여주는 단막극이었다. 이휘재 역시 이 단막극 주연으로 운좋게 '선택'을 받았거나, 자신이 출연을 '결심'한 결과로 스타덤에 올랐다.
누구에게나 현재의 모습은 지난 세월 자신을 스쳐간 수많은 선택의 결과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영어(囹圄) 의 몸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 고난을 자처했지만 지금에 이르러 세상의 우러럼을 받기도 한다.
인간이 결국은 한치 앞을 볼 수없는 미욱한 존재이다보니 선택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다. 이런 순간이 닥쳤을 때 뇌에서 두가지 반응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눈 앞에 차가 돌진해오고 있는 상황이라면 공포와 본능을 관장하는 기억장치에서 운동세포로 곧장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장기기억장치에 있는 데이터와 비교 대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즉 과거의 경험과 지식등 축적된 정보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음으로써 비교적 안전하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을 할 수 있게 이끈다. 이 정보에는 보고 듣고 읽고 느낀 많은 사례들이 지각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의 무모하고 사려깊지 않은 행동을 보고 '지각 없다'는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비교적 예상 가능한 결과를 두고 어렵고 불확실한 선택을 하게 될 때는 평소 가치관과 양심이 주요한 판단 근거가 되고 의지를 앞세워 관철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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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종편 방송에서 이름난 피부과의사가 하는 얘기를 듣었다. 그는 원래 아이를 좋아해서 소아과 의사가 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군복무 중이던 어느날 찾아 온 의과대 동기의 말을 듣고 피부과로 선택을 바꿨다고 했다.
그 친구가 피부과를 권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번째 피부과는 당직이 없다. 즉 늦은 밤이나 휴일 피부질환으로 찾아 올 환자가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응급환자가 없다. 피부질환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을테니 당연하다. 이 두가지는 편하고 안전하다는 장점을 얘기한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젊은 여자 환자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생사를 오가며 의식을 잃은 환자보다는 젊고 어쩌면 아름다울 수도 있는 여자 환자를 대하는 것이 어느모로나 나을것이다. 이는 삶의 질을 어디에 두는냐의 문제다.
사명, 윤리, 가치관을 들먹이지 않는다면, 의사 역시 생활인이고 수많은 직업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면 누구나 예상가능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같은 상황과 선택의 기로에서 이 세가지 조건과 모두 상반되는 선택을 한 의사가 있어서 이야기 거리를 만든다.
굳이 당직을 서지 않아도 언제 들이닥칠 지 모르는 응급 환자를 위해 사무실을 거처로 쓸 수 밖에 없고 목숨을 걸고 헬기에 타야 하는 중증 외과를 선택한 이국종, 정경원 같은 이다. 꺼져가는 생명에 숨을 불어넣어야 하는 중압감에 늘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전쟁 치르듯 보내야만 한다. 그들의 환자는 찢어지고 깨져 피가 터진 흉칙한 몰골이다. 볼에 난 뽀드락지를 짜고 광채나는 피부를 바라는 젊은 여자 환자도 아닐 뿐더러 의료보험 혜택이 아니라면 평생 불구로 살아야 될 운명에 처한 소외 계층이 대부분이다.
뉴스가 아니면 보기 힘든 이국종의 모습은 늘 초췌하고 얼굴은 굳어있다. 깔끔한 정장 차림보다는 수술복이 낯익다. 종편이라면 정치시사든 예능이든 자주 얼굴을 내미는 함익병은 언제나 경쾌하고 밝은 이미지다. 정장이 아니면 캐쥬얼한 복장이 어울린다.
이국종의 아버지는 가난한 상이용사다. 의료복지카드를 든 어린 이국종을 외면하던 병원의 냉대에 "아픈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어른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따뚯하게 대해 준 의사와 간호사의 영향으로 의사가 됐다고 했다. 함익병의 아버지는 고교 선생님이셨다. 모친도 선생님이셨으니 유복한 집안이었다. 성적에 맞춰 의대를 갔고, 의대 동기의 시의적절한 조언으로 피부과를 선택해서 한달에 집 한채 값을 버는 고수익자가 됐다.
이국종의 의지는 병원의 부당한 처사와 보건당국의 무사안일한 태도에 꺾였다. 그는 결국 외상센터장에서 물러나 교수직으로 돌아갔다. 함익병의 선택은 부를 가져왔고 그의 의원은 문전성시다. 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종편에서 그를 만날 수 있고, 정치권은 그를 부르고 있다.
함익병과 이국종을 보며 친일 부역자들의 후손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독립 유공자 후손이 가난하게 사는 현실을 연상했다면 비약이 심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의 길을 택하고서 최소한 생명을 다루고 인술을 펼치는 고귀한 사명에 대해 들은 바는 있을테니 방송에서 결코 바람직스럽지만은 않은 자신의 선택을 자랑하는 일은 다시는 보고 싶지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세상을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바라지는 않는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하고, 같은 입장에서 숭고하지만 고단한 길을 선택한 누군가를 모독하는 결과를 낳게 되니 하는 말이다.지각없는 어른이 많아질 수록 세상은 살 만한 곳이 못된다.
아울러 이국종 교수의 뒤를 이어 외상센터장에 선임된 애제자 정경원교수의 건투를 바란다. 제2, 제3의 어린 이국종이 이 나라 어디에선가 당신들을 지켜보며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사실이 힘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