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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Feb 25. 2020

어떤 편견-1

"까악~ 꺅~~" "오빠~"
아직은 앳된 하이톤의 괴성이 들린다면 어김없이 그들중 누군가가 출몰했다는 신호다.
10여년 넘게  오가는 홍대 거리에는 이런 괴성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예전에는 스타라 불리는 연예인이었고 요즘은 아이돌들이다.
느닷없이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인다면 이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밴드나 가수의 공연이 있는 날이다.
그들과 마주보며 지나치든, 옆자리에 앉았든 나로서는 예나 지금이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무대에서 내려와 남들처럼 즐기러 나왔을텐데 굳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어른으로서의 배려다.

좀 다른 측면이긴 하지만 그들이 이런 배려를 받을 수 있는 동네가 있다.
강남 청담동이다.
예전에는 동네 앞을 흐르는 한강물이 맑다고해서 유래된 지명이라는데 지금은 '청담동 며느리'로 대표되는 관리 잘한 명품족이 출몰하는 물 좋은 동네가 됐다.
이 동네에서 연예인을 아는 체 한다는 건 '청담동스럽지 못한 짓'이다.
좀체 보기 힘든 외제차, 서민의 연봉을 걸칠 수 있는 명품 샾, 타 지역의 빌딩 한 채 값인 빌라가 즐비한 그들만의 세상에서는 연예인이란 존재조차 특별할 것 없는 일반인 취급을 받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부와 외모로 계급과 신분을 나누는듯한 '청담동스럽지 못하다'거나 '청담동 며느리'란 말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청담동스럽지 않은 공간이 생겼다.
'소전서림(素磚書林)'이란 도서관이다.
게다가 경영, 경제는 물론 예술도 아닌 '문학 전문도서관'을 표방한다니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다.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는 편견임을 고백한다.
부자동네라고 해서 도서관이 들어서지 말란 법이 없고 더구나 문화를 향유하는데서 빈부를 논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안다.

그런데 어떤 편견은 '혹시'라는 기대가 '역시'로 바뀌길 거듭하면서 딱지가 생기고 굳은 살이 박히게되면 내 살로 받아들이게 되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이 도서관 또한 나의 그 편견을 불식시키지 못했다.
도서관이 내건 기치와 운영방식, 심지어 건축과 인테리어까지 극히 청담동스럽기 그지 없어서다.

“책과 좋은 사람들을 통해 재미있게 살자. 그 생각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학이 뭔가. 인간의 모든 삶이 문학 안에 다 들어 있다.”
건물에 문학 도서관이 들어선 까닭이다.
여기서 '좋은 사람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최소한 하루 5만원의 입장료를 내고 2만원을 주고 와인 한잔 쯤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문학안에 들어있는 '인간의 삶'은 모두의 삶일텐데 고가의 입장료라는 철책을 둘러놓고 바깥 세상 사람들의 삶을 책이란 망원경으로 들이다보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고가의 수입자재와 외국 유명 건축가, 재벌가 인테리어 경력의 건축가가 솜씨를 발휘한 세련된 외관와 고급화된 내부 공간이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내게 던지는 질문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니로서는 오래 묵은 숙제이기도 하다. 디자인이 예술과 차별되는 점 중 하나는 디자인은 의뢰자가 존재하고 그의 요구와 용도를 수용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건축도 인테리어도 디자인의 영역이다.
나는 이 도서관이 의뢰자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고 용도에 따라 훌륭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도서관의 건축과 인테리어를 그들에게 맡긴 것은 옳은 것일까?

유명 카지노의 설계자는 갬블러 출신이다. 평생동안 카지노를 들락거린 도박사만큼 고객의 심리, 공간의 유용성 무엇보다 도박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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