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뛰지는 말자1

by 문성훈

내 친가나 외가 식구들은 불교이고, 처가는 목사 사위가 둘이나 있는 독실한 개신교 집안이다.
그러니 친,외가 처가를 통틀어 카톨릭은 유일하게 우리 가족뿐이다.
카톨릭은 아무 연고도 없이 결혼 후 개신교이던 아내를 배려해 내가 정한 종교다.
그렇게 법명이 '원봉'이었던 나는 '프란치스코'가 됐고, 뒤이어 아내도 세례를 받아 지금은 게으르고 냉담한 나를 채근하는 신실한 신자가 됐다.

결혼 전 나는 청파동 달동네 연립에서 살았다. 꼭대기층이었으니 밤이면 창 턱에 걸터앉아 서울 야경을 내려다보는게 낙이었다.
점점이 놓인 촛불처럼 보이는 도시 불빛과 어스름하게 윤곽을 드러내는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무수히 꽂힌 교회 십자가를 보며 서울은 커다란 공동묘지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하는 상상을 했었다.



내가 교회를 멀리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국민학교 6학년때 쯤의 일이다.
개신교 교인였던 사촌형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교회를 갔다.
봄이었던지 설교 중에 졸음이 쏟아져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천둥벼락 치듯 사방에서 울부짓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이른바 통성기도였는데 교회 안에서 일어서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목사도, 신도도 울부짖으며 기도를 하는데 어린 내 눈에는 실성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옆에 앉은 사촌 형도, 앞에 앉은 나보다 어린 꼬마도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는지 용서해달라, 잘못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빌고 또 빌었다.
심장은 쿵쾅거리는데 집으로 줄달음치던 내 등줄기에서 흐르던 식은 땀이 마르던 느낌은 여전히 선명하다.
'통성기도'가 한국 개신교 예배나 집회에서만 하는 독특한 '한국식 기도(Korean prayer)'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지난 후였다.

늦은 결혼을 한 편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나이가 들 수록 누군가의 평생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구속감, 가정을 일구고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된다는 중압감이 더해갔다.
한 여자를 만나 알아가고 사랑하기까지 그리고 그 사랑이 속박이 아닌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 주리라는 희망, 가장으로서 감내해야 할 삶의 무게보다 흔들리지 않는 안정과 균형을 찾게 하리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흘려 보낸 셈이다.
그런데 신앙심은 그 모든 우려와 불신을 일시에 불식시키고 국적은 물론 시간마저 단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통일교를 알게되면서다.
교리와 내밀한 교단 운영까지는 알 수 없으나 외부에 알려진 합동 결혼식과 신자들간의 만남부터 결혼에 이르는 과정만 보더라도 놀라운 종교다.
다중이 모이는 집회나 행사를 기피하는 현 시국에서도 3만명의 새로운 쌍이 탄생했다. 종교가 개인의 가치관과 인생관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하겠지만 바이러스마저 다스릴 수 있는지는 몰랐다.

직접 만나보지도 주변 사람 중에도 신자가 없으니 깊게 알 수는 없었지만 존재 정도는 알고 있던 신천지교가 일약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모이고 뉴스 거리가 되고 있다.
집요하고 음험한 선교방식보다 더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단연코 그들의 예배방식이다.
무릎과 무릎이 맞닿을 만큼 가깝게 꿇어 앉아 개신교의 통성기도를 드리는데 거기에 어깨동무라는 형식을 더했다.

개신교나 신천지교 공히 예배중에 마스크를 쓰는 건 불경하게 여긴다.
'비말감염'이라는 과학적 근거조차 목사와 교주의 그릇된 종교적 신념을 굴복시키지 못한다.
그들이 정작 걱정하는 건 바이러스의 전파보다 줄어들지 모르는 신도와 헌금액이다.

역사적으로 무지가 이성을 이긴 사례는 드물지 않고 인간의 탐욕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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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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