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방법 서설 discours de la methode 1637> 첫 문장이다. '양식(良識)'은 프랑스어인 'bon sens'의 번역으로 '분별' '이성'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 '잘 판단하여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가진 능력'이라는 의미다. 과연 그럴까? 부족한 식견과 짧은 경험이지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사람마다 동등하게 나눠가진 능력이 '어리석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인류가 지성과 자각을 갖춘 이래로 그 시대의 지혜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던 수 많은 문제들이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참사로 기록되고, 오히려 더 큰 난제가 되어 여전히 남아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범하는 대부분의 '어리석음'은 자기 안에 숨은 어리석음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무시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설사 분별력을 가졌더라도 부지불식간에 고개를 드는 숨어있던 이기심과 오만함이 눈을 가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21세기 현대인으로 넘쳐나는 정보와 급변하는 세상 흐름속에서 중심을 잡고 정신을 잃지 않기란 참으로 힘들고 어렵기만 하다. 무시하자니 뒤처지는 것 같고, 급류에 내맡기자니 불안하다. 이런 고행에서 벗어나려면 산으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거나 무골호인(無골好人. *여기서 '골'은 한글이어야 한다)행세를 하며 사는 수 밖에 없다.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은 피리부는 사나이를 뒤따르는 아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ㆍ
사람마다 이 문제를 삶의 무게로 여기고 각자의 방식대로 시대의 강을 건너고 있을 따름이다. 누구나 참과 거짓, 알맹이와 껍데기 정보를 선별하고, 장마철 계곡물보다 빠른 시대의 급물살에 떠내려가고 싶지 않다. 나는 이 고민을 해결하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데 세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멀찌감치 떨어져 보는 것이다. 나를 가로 막고 있는 벽이 코끼리라면 어느 부위가 내 시야를 가리고 있는지, 나아가 그 코끼리가 서있는 위치가 벼랑 앞인지, 사바나 평원 가운데 인지는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한다. 학계에 떠도는 우스개소리중에 '학사는 코끼리, 석사는 코끼리 뒷다리, 박사는 코끼리 뒷다리의 발톱을 전공한다."는 말이 있다. 세상이 공평하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범부(凡夫)라면 코끼리와 배경까지 볼 수 있을텐데, 박사는 코끼리 발톱에 낀 때를 돋보기로 들여다보고 있으니 말이다. 박사는 자신이 들고있는 돋보기가 작은 것을 더 크게 볼 수 있게 할 뿐이라는 걸 간혹 잊는다. 돋보기는 깊지만 좁은 지식인데 그로써 모든 해석을 하려는 건 오만해서다.
지금 우리는 전문가, 박사, 교수들이 발견한 발톱 때에 대한 소견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코끼리를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최소한 '코끼리는 까맣고 아주 작아'라고 소리치고 다니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