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바람이 땀을 식힙니다-1

기형도,호아킨,김대중 그리고 ...

by 문성훈

지금 우리는 세찬 광풍이 몰아치는 들판에 서 있습니다.
남도에서 도다리쑥국 향을 맡은 지도 꽤 됐는데 봄은 아직 저만치서 느리게만 옵니다.

미세먼지를 걷어낸 바람이 집을 날리고 차를 멈추고 도시를 덮치는데 저는 열무 삼십단과 덩그러니 방에 담긴 찬밥이었을 시인을 떠올립니다.
3월이면 기형도(1960. 3. 13~1989. 3. 7)를 생각합니다. 봄기운을 빌어 났을텐데 봄바람에 실려 홀연히 떠난 사람입니다.

< 엄마 생각 >

열무 삼십 단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의 시는 언제나 아립니다. 기형도는 제게 이름으로 먼저 다가온 시인입니다.
시인의 이름이 뭐 별달라야 할까싶습니까만 왠지 시인다운 이름같기도 아니기도 해서입니다.
아마 그는 봄에 나서 겨울을 나고 봄에 떠났지 싶습니다. 그 자리에 가을은 끼어도 어색하지 않는데 여름은 왠지 어색합니다.

자랑하고 싶은데 집에 엄마는 없고 상장으로 종이배를 접어 개천에 띄우던 소년은 그렇게 소주 한 병을 쥔 채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또 혼자 잠들었다지요.
아마도 빛이 차단된 극장 안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의 자궁이고 품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와 여섯살밖에 차이 나지 않은 영원히 젊은 시인의 시는 오래도록 남아 이맘때쯤이면 누군가를 흔들겁니다.

사람의 이름은 참 묘합니다. 제게 한문을 깨치게 해 준 신문 사설에 자주 등장하던 이름이 있습니다.
김대중(金大中)이라는 이름입니다.
한동안 대통령이 된 분과 한자마저 같다보니 한동안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이름은 같았지만 두 사람은 평생 척을 지고 살았다지요.
책을 많이 읽고 박학다식했던 분으로 기억되는 대통령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비록 먼저 계란판이 되곤 하지만 아직 그 위세가 여전한 신문사의 고문인 또 한분의 글은 댓글이 차단된 채 지금도 실리고 있습니다.
정치가의 아들은 정치를 하다 선친 곁으로 갔는데 기자의 아들은 기자가 되었다가 그만두고 외국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유력지의 유능한 기자였다는 얘기를 지인에게서 들었습니다. 가끔은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풍성한 수상소감의 향연장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역시 흔한 성이 아니지만 봉준호 감독의 위트 넘치고 격조있는 수상소감에 이어 남우 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의 수상소감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대신한 그의 인류애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을 감동으로 이끈 대목은 자연에 대한 겸허함과 우리와 함께하는 생명체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는 자연세계로부터 너무나 분리되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우리는 자연세계로 쳐들어가 자원을 약탈합니다. 우리는 소에게 인공수정을 시켜도 된다고 생각하고, 그 소가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를 빼앗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미소가 괴로워 우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새끼에게 돌아가야 할 어미소의 젖을 빼앗아 우리가 마시는 커피에 붓고, 우리가 먹는 시리얼에 넣습니다.
저는 우리가 개개인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우리가 무언가를 희생하고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인류가 가장 뛰어난 순간에는 우리는 정말로 창의적이고, 창조적이고, 독창적입니다. 저는 우리가 사랑과 연민을 우리를 이끄는 원칙으로 사용하면 세상에 지각을 가진 생명체와 환경에 이로운 변화의 체계를 창조하고 발전시키고 적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호아킨은 '채식하는 제임스 딘'으로 불리던 촉망받던 청춘스타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 1970. 8.18~ 1993.10 31)의 동생입니다.
세상을 떠난지 오래지만 여전히 동생은 형을 그리워하고 배우로 성공한 지금도 '리버의 동생'으로 불리길 마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성격 형성과 정서에 많은 영향을 줬던 것 같습니다.

눈치를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형의 이름 'River'와 그들의 성 'Phoenix' 역시 예사롭지는 않습니다. 호아킨 역시 아역 시절 예명은 'Leaf Phoenix'였습니다.
다른 형제 자매들 이름 역시 'Rain' 'Liberty''Summer'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모가 자연을 벗삼아 자유롭게 떠돌던 히피였기 때문입니다. 부모 역시 원래의 성을 버리고 ''Phoenix'란 성을 가졌습니다. 호아킨이 소수자와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게 된 이유가 이름만으로도 짐작이 되는 것 같습니다.

뛰어난 예술가 중에는 이름만으로 그 성격을 드러 낸 사람이 꽤 있습니다.
돈을 밝히기로 유명했다는 살바도 달리(Salvador Dalí)는 그 뜻이 'Avida Dollars(달러에 굶주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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