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바람이 땀을 식힙니다-2

기형도,호아킨,김대중 그리고...

by 문성훈

피닉스 형제는 어린시절 히피인 부모를 따라 각지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사실상 구걸에 가까운 길거리 공연을 하며 예술적 끼를 발휘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르던 노래는 그들의 부모가 가입한 '하나님의 자녀들(The Children of God)'이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찬송가였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오묘하고 종잡을 수 없지만 종국에는 거르고 걸려져 맑아지기도 하는가 봅니다.

저는 어린시절 여인숙이 딸린 건물에 세들어 살았습니다.
저와 같이 놀아주고 귀여워해주던 누나들이 여인숙에 있었지요. 저도 누나들을 참 좋아했더랬습니다.
군것질거리가 없어 입이 궁금하거나 엄마가 마실을 나가고 없을 때면 누나들이 있는 방에 놀러갔으니까요.

방의 이불을 개고 방 청소를 하고 손님에게 물을 가져다주는 일을 하던 누나들이 손님들과 잠자리도 같이 했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그제서야 그때 이미 어른이던 사촌형이 만취한 채 드나들었던 이유도 알게됐습니다.

누나들은 자주 목욕탕을 갔습니다.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목욕탕을에 다녀 온 누나들의 빨갛게 익은 볼, 아직 덜 말린 머리카락에서 나던 꽃향기를 기억합니다.
풍족하지 않던 그 시절 남들은 명절이어야 가던 목욕탕을 누나들이 그렇게 자주 가던 이유를 어른이 된 지금에야 어렴풋이 짐작합니다.

시인 김수용은 반시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술 먹고 창녀하고 자고 나서 다음 날 새벽길의 여학생들이 그렇게 깨끗해 보일 수 가 없다' 고요.
왜 그랬을까요. 자기 자신이 추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도 누나들도 깨끗해지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누나들은 추하지 않았습니다. 시인이 추했을 뿐입니다.
가끔 누나들이 그립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기형도를 얘기하고 김대중과 호아킨의 이름을 들먹이고 여인숙 누나들을 추억합니다.
기형도와 김대중은 기자였습니다.
기형도는 중앙일보 기자였고 김대중은 조선일보에 평생을 몸담았으며 그의 아들은 동아일보 기자였습니다.

호안킨의 부모는 사이비 종교단체에 빠져 자녀들에게 길거리에서 찬송가를 부르게 했습니다.
하지만 기형도의 아름다운 시는 영원히 암송되어질 것이고, 김대중의 편협하고 거짓된 사설은 한국 언론의 오점으로 길이 남을 겁니다.
호아킨이 어린시절 불렀던 찬송가는 잊혀지고 그의 수상소감이 세상을 바꾸려는 작은 울림으로 다가오듯 음습한 종교단체를 매개로 번지는 바이러스도, 김대중의 후예들이 쏟아내는 극악하고 모략으로 가득찬 기사들도 고달픈 시절 누나들이 그토록 벗기려 했던 세상의 때처럼 쓸려나갈 겁니다.

김대중의 후예들은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추한지 얼마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지 모릅니다.
저는 플라스틱바구니를 들고 목욕탕으로 향하는 여인숙 누나들의 발걸음이 헌금봉투를 쥐고 모여드는 신자들보다 경건하고, 그들의 주문같은 기도보다 누나들의 수다를 듣고 싶고, 기레기들이 써대는 잉크의 역겨운 냄새보다 누나들의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나던 꽃향기가 얼마나 향기로왔는지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기레기들의_악취가_코를_찌릅니다
#그래서_마스크는_꼭_써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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