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님아. 여기 ㅇㅇ파출손데....." 기분좋은 상상은 공상에 그치기 일쑤지만 안좋은 예감은 현실로 닥치기 마련이다. 기어이 그런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십여년전 그 당시 막내동생은 의료관련 회사를 다녔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우스개소리도 잘하는 녀석이라 사내평판도 좋았고 무엇보다 영업실적이 탁월해서 젊은 나이임에도 부장자리를 꿰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하나 있었으니 그 회사 사장이다. 좋게 말하면 저돌적이고 끈기있는 사업운영으로 나름의 입지를 굳힌듯 보였는데 인성은 영 글러먹은 사람처럼 보였다. 가령 대 결제로 애를 먹이는 거래처가 있으면 찾아가 으름장을 놓고 온종일 다른 일은 볼 수 없게 만들어 반드시 받아온다든지하는 능력은 탁월한데 거의 매일이다시피 카바레나 나이트클럽를 들락거리며 여자를 밝히고 가정사에는 소홀한 사람이라는 점이 그랬다.
동생 또한 결혼 전이었고 노는데는 빠지지않는 녀석인지라 그 사장을 또라이인데다 양아치라고 하면서도 측근처럼 늘 붙어다니는 것이 어쩐지 불안했다. 가끔 내가 그런 내색을 하면 "걱정안해도 된다. 일에서 배울 것도 많다."라며 귓등으로 듣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와는 6살 차이인 동생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보다 형인 나를 무서워하고 말을 잘 듣는다. 내가 가정을 꾸리고나서도 그리고 아이 둘을 낳고서도 동생은 결혼을 하기 전까지 우리 부부와 같이 살았다. 총각 떄 부지런히 돈을 모아야 한다면서 아내가 동생의 독립을 반대했다. 같이 살아서인지 동생과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여느 삼촌,조카사이보다 돈독하다. 우리 부부에게 못할 요구나 애기도 서스럼없이 삼촌에게 하고, 삼촌이 주는 용돈은 언제나 두둑하니 안좋을 리 없다.
그 동생회사 사장이 모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거쳐 박사과정을 밟는 이유는 순전히 인맥을 넓히려는 의도에서였는데 겉으로는 술 좋아하는 호방하고 젊은 회사대표 이미지로 제법 인기가 있다고도 했다. 한번은 주말에 지방 어딘가를 다녀온다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사장 결혼식에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니 사장 결혼했다면서..." "얼마 전에 이혼했다. 그런데...." 동생이 밥먹다 말고 키득거렸다. "근데 결혼식장이 어디냐 하면 처음 전부인하고 결혼했던 그 예식장이란다. 이유가 뭔지 아나?" "또라이 맞네. 이유가 뭔데?" "첫 결혼할때 온 하객이 찾아오기 편하라고 그랬다더라"
무엇보다 그 회사를 그만두라고 종용했던 건 사장이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폭력적인데다 직원을 자르거나 그만두려는 직원에게 하는 몹쓸 행태때문이었다. 실적이 안좋거나 근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을 휘두르기 일쑤고, 고가의 작은 부품을 취급하고 출고가 전산화되어있지도 대금회수가 빠르지도 않다보니 직원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없던 문제를 만들어 퇴직금도 제대로 안주고 내쫓으려 한다고 했다. 어떻든 동생 말에는 귀를 기울이고 만류도 들으니 그런 상황이면 나서서 제지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내심 걱정스러운 나날이 계속되던 중에 전화가 온 것이다. 언젠가 동생에게도 닥칠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출소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완력으로 당할 녀석이 아닌데 왜 폭행을 당했는지 의아스러웠다. 동생은 키는 작고 통통한 얼룩에 웃는 상이지만 벌어진 어깨에 당당한 몸을 지녔다. 게다가 부모님 슬하에 있을 때는 나조차 몰랐었지만 그 또래에서는 나름 알아주던 주먹이었다는 걸 알게 된 이후였다.
동생은 나보다 더 친구관계가 넓었다. 서울대를 간 모범생부터 중고교에서 퇴학당하고 건달이 된 녀석까지 친구라면서 찾아왔다. 그 중에 목소리부터가 듣기 불편한 쇳소리를 내는 사채를 한다는 녀석이 있었다. 손을 씻었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 하는 일도 나로서는 별 마뜩잖보였는데 내게는 친구 형이라고 살갑게 대하고 깍듯하기 그지 없었다. 동생이 자리를 비웠을 때 무슨 얘기 중에 그 녀석이 그랬다. "행님. 모르셨지예. 학교 댕길 때 마산 아들도 oo이는 안건드렸심니더. 딱 한 방.... 딱 한방이었거든예. 주먹 씹니더"
그런 녀석이 사장에게 당했다니 의외였다. 단지 녀석이 전화 상으로 한 몇 번을 강조한 말 "나는 한 대도 안 때렸다. 가만히 있었다. 내만 맞았다" 로만 상황을 짐작할 뿐이었다. 파출소에 도착을 했다. 파출소 입구에 동생이 혼자 나와있었다. 멀리서도 옷 매무새가 흐트러져 있다. "행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