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학부 전공과는 무관한 법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평소 언행으로 봐서는 과시하고자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 수록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걸 잘 안다. 그런 그가 그가 행패를 부리다시피해서 수금을 하던 상대는 의사들이었다.
의사, 회계사, 교수, 변호사, 기자, 판검사, 대표이사. 배웠거나 가진 사람들은 조직이나 권력이라는 옷을 벗고나면 왜소해지기 마련이다. 전문직은 그 분야의 지식과 배경이 통하지 않는 상대나 분야에서는 소심해지고, 가진 사람은 손해를 보거나 가진 걸 잃게될까봐 불안해한다. 최소한 망신을 당하는 측은 체면과 위신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지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보다 강해 보이거나 지위로 누를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오히려 심리적으로 더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타협이나 설득이란 방법을 택하지 않고 으름장을 놓고 패악을 부린 이유다. 상대의 직업이나 성격, 상황에 따라 다른 방법을 구사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소소한 개인사를 해결하는데도 이토록 감안해야 할 것이 많고 복잡한데 하물며 나랏일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제 1야당의 대표가 그리 절실해보이지 않는 마스크를 구입하느라 약국 앞에서 줄을 서고, 진보정당의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에 확진자가 나왔다고 살균제를 뿌리러 출동한다. 이유는 알겠는데 그 이유를 알고있어서 불쾌하다. 국민을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진정 국민이 겪는 불편을 체감하려 했다면 줄 선 간격을 2미터씩 띄우는 봉사부터 했어야 하고,(더구나 기차를 타겠다고 관용차를 플래폼까지 진입시킨 그가 아닌가) 지역구 주민을 위한다면 관계당국에 조속한 조치를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현 정부를 비난하기 위해서, 다분히 유권자에게 보여주려하는 행동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겐 이런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다. 그래왔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 통했었고 지금도 통할 것이라고 믿어서다. 그 믿음은 막걸리와 고무신에 표를 맞바꿨던 과거의 우리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고 가짜뉴스와 왜곡 편파보도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실의 반영이다.
이상적이고 그림같은 구도는 현실과 괴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반칙이 허용되는 프로레슬링에서 당당하게 승부를 겨눠서 이길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아니라면 다시 작전을 짜야한다. 냉정하고 승패의 결과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오는 정치와 선거에서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과거에 머무르면서 이상을 말하고 꿈꾸는 그들이 가증스럽다. 현실을 직시하고 상대에 주효한 전략을 구상해야 승리할 수 있다.
우리는 재난 상황에서 대구시장과 경기도지사가, 질병통제본부와 검찰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답답한 현실이지만 희망의 빛줄기마저 차단 된 건 아니다. 우리는 다행히 책상이 아닌 현장 대처를 독려하고 총리에 이어 직접 재난 현장을 찾아가는 대통령을 가졌다. 마스크 생산 공장을 방문해서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마스크를 벗는 모습에서 국민은 다소의 위안을 얻는다. 정치적 행보라면 일말의 진심을 담아 세련된 모습을 연출하는게 차라리 국민을 모독하지 않는다. 그정도도 헤아리지 못할 우둔한 국민은 아니다. 정말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분의 동선을 심층 역학 조사한 결과 가족 3명만 접촉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가족조차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가 외출 시에는 항상 KF94 마스크를 착용하고 식당에서도 미리 주문한 음식을 받아 곧바로 귀가하는 등 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보건소 구급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이동할 때 아파트 23층에서 계단을 통해 걸어 내려왔다고 한다. 우리가 이런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