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衣)식주-2

by 문성훈

더블 수트가 어울리는 배우라면 <킹스맨>시리즈의 '콜린 퍼스'가 아닐까 싶다.
영화 줄거리야 007시리즈의 다른 버전이니 달리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콜린 퍼스의 수트핏만은 시샘이 날만큼 훌륭하다.
파티에서 본드 걸을 유혹하는 007의 수트핏도 그에 못지 않지만 야구 모자에 스포츠 점퍼를 입었던 해리 하트가 첩보 요원으로 거듭나는 소품으로서 수트가 등장하는 <킹스맨>만큼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007시리즈의 주인공은 정보국인 MI6소속이고, 콜린 퍼스는 킹스맨 요원인데 둘 다 영국의 기관이다. 우리가 흔히 '양복'이라고 일컫는 수트의 기원은 영국의 전통의상에서 비롯된 격식있는 옷차림이다.
킹스맨요원의 아지트인 킹스맨 양복점의 촬영지는 런던의 유명한 양복 거리에 실존하는 '헌츠맨(1849~)'이다. 그들의 아지트가 양복점이고 복장만큼은 수트를 고집하는 이유를 콜린 퍼스의 대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The suit is a modern gentleman's armour, and the Kingsman agents are the new knights.(수트는 현대 신사의 갑옷이며,킹스맨 요원은 새롭게 태어난 기사들이다)"
패권을 미국에 넘겨준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긍심과 해가 지지않았던 대영제국의 향수가 짙게 배인 대사다.

18C말 19C초 유럽과 미국의 귀족 복장인 연미복에서 제비꼬리 모양을 자른 것이 턱시도인데 이 턱시도를 오늘날의 신사정장으로 자리잡게 한 인물이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로맨스'의 주인공 윈저공(에드워드8세 1894~1972)이다.
168 cm의 단신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패션에 남다른 열정을 보인 당대의 패셔니스타인 그가 남성 정장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두툼한 삼각꼴의 넥타이 매는 법을 창시해서 지금도 '윈저 노트'로 불리고 넓게 벌어진 칼라의 셔츠 스타일을 '윈저 칼라 셔츠'로 불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자로 잰듯 딱 떨어지는 정장의 효시인 사내가 이혼녀와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버릴만큼 캐쥬얼한 사고를 지녔었다니 놀랍다.

수트가 영국에서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정작 멋지게 잘 소화하기는 이탈리아 남자들 아닐까 싶다.
유럽여행 중에 눈길이 가는 이탈리아 남자들의 수트는 내 눈에 죄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같아 보였으니까 말이다.
같은 서구인이지만 아무래도 단신의 윈저공보다는 다리가 긴 사람들에게 잘 맞는 복식이다.

키 큰 서양 양복이 키 작은 조선 땅에 들어 온 것은 대한제국시대 공직의 문부복으로 쓰이면서다.
고종을 비롯한 문부대관들의 대례복이 처음은 군의 의전용 제복에서 유래되다보니 금술이 놓여지고 훈장이 주렁주렁 달리게 됐다.
민간에서는 전통혼례 때 입던 사모관대 복장의 벼슬아치들이 사타구니까지 갈라진 바지와 몸에 꼭 죄는 재킷을 걸치게 된 것이다.
더블 수트는 배를 감싸듯 앞섶을 포개는 방식이니 한복을 갖춰입는 방식과도 흡사하다.

그런데 한복과 양복의 가장 큰 차이를 들라면 착용하는 방식과 착용감이 아닐까 싶다.
이는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사람의 행동 양식까지 다르게 한다.
재킷은 입고 저고리는 걸친다. 수트 바지는 밸트로 조이고 한복 바지는 끈으로 묶는다.
재킷은 품에 맞아야 하고 저고리는 품이 넉넉해야 한다. 수트 바지는 다리의 생김새을 따라가고 한복바지는 항아리 모양이다.
그러니 수트는 몸을 드러내고 한복은 몸을 감춘다. 왠지 옷이 주인이 되는 것 같은 수트에 비해 한복은 주인을 감싸고 있는 듯 하다.
몸과 옷 사이가 긴장감이 감도는 양복과 달리 비워져 있는 한복은 몸을 옥죄거나 구속하지 않는다.

여백과 공간은 인간사에서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
법(法)과 정(情), 공식과 이치, 적확과 여분이라는 각기 다른 사고의 틀이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나 추측한다.
양복을 다림질해 입듯 한복 또한 풀을 먹이지만 유독 한복 바지만큼은 주름을 잡지 않는다. 나는 가끔 칼날같이 각을 세운 바지 주름이 장딴지 근육으로 펴질 때 차가운 이성을 지우며 숨겨진 본능이나 야성이 드러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에 비하면 항아리처럼 앞 위 분간이 어려운 풍성한 한복 바지는 자못 감성적이다.

자로 잰듯한 스케쥴보다는 공극이 있는 일상을 바라고 모난 심성을 덮어주던 어머니 치마폭처럼 푸근한 성품을 다듬고 싶은 내게는 이제 수트보다는 개량 한복이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콜린 퍼스의 더블 수트핏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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