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은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웃통은 자주 벗어제껴도 수트는 입지 않아 넥타이를 맬 일이 없다. 건달의 싸움은 멱살을 잡는데서 시작되니 잡힐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함이다. 그들이 머리이 짧게 치는 이유도 같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는 옛 갱단 두목이나 조폭 두목은 수트차림이다. <대부>시리즈의 주인공들도 그랬고 <범죄와의 전쟁>에서 하정우도 수트를 입었다.
그들에게 수트는 지위 상승에 따르는 부상(副賞)이다. 현장을 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고 어둠 속에서 쌓은 재화로 양지에서 거래를 하겠다는 시도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칼라 없는 티셔츠에 짧은 머리를 해야만 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파자마같은 죄수복으로 돌아간다. 넥타이가 그들에게는 앞으로 닥칠 운명을 암시하는 올가미인 셈이다. 그에 비해 신사의 넥타이는 거의 유일한 장식아이템이다. 보온기능도 탁월하지 않고 그 역할도 애매한 천조각에 불과하지만 노타이 차림의 수트로 세련된 느낌을 줄 지는 모르지만 격식을 갖췄다는 얘기를 들을 수는 없다. 계절 별로 값비싼 수트는 여러 벌 못갖췄어도 넥타이만 잘 선택한다면 패션 감각을 뽐낼 수 있다. 몇 벌 되지 않는 수트를 가진 나 역시 좋은 실크 넥타이는 수십장이다.
수트를 입을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넥타이만큼이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 패션아이템이 있다. 안경이다. 안경은 영어로 glasses이기도 하지만 안경점에서는 eyewear라는 말을 더 쓰고 강조한다. 기능보다 패션을 더 강조하려는 뜻이 아닐까 싶다. 10여종을 가지고 있는데 20여년전부터 써 오던 것들이다. 고가라도 마음에 들면 큰 맘을 먹고 사기도 하지만 소중한 눈만큼 관리를 잘하려고 해서 지금까지도 번갈아 쓰고 있다.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는 자리면 학자풍의 뿔테를, 디자인 프리젠테이션이 있는 날이면 금속성의 얇은 테를 선택하는 식이다. 쓰고 있는 안경만으로 직업이나 성격뿐만 아니라 그날의 컨디션, 마음가짐까지 드러낼 수 있으니 참으로 요긴한 소품이다.
수트에 대한 얘기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옷을 말하고 있다. 나는 섹시한 사람을 좋아한다. 값비싼 수트와 잘 고른 넥타이로도 완성할 수 없는 섹시한 뇌를 가진 사람 말이다. 섹시한 뇌는 타고난 지능이 높거나 담긴 지식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미를 잃지않으면서 냉철한 판단을 하고 지적 호기심과 질문으로 가득찬 뇌다. 그래서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해야 할 말은 하고, 행동이 필요할 때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터득한 움베르토 에코같은 인물이 되길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입은 옷은 허름한 점퍼에 불과하더라도 킹스맨 양복점의 수트보다 빛날 것이며, 그 사람의 땀냄새는 그 어떤 향수보다도 그윽하다. 킹스맨의 고가 수트는 양아치도 사 입을 수 있지만 그 점퍼는 구할 수가 없다. 어떤 백화점을 둘러봐도 살 수 없는 향수가 몸에 배인 사람을 우리는 본다. 유희석병원장의 넥타이 동여맨 의사 가운보다 이국종 교수의 수술복에 경탄하고, 돌담병원 재단이사장의 광채나는 수트핏보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허름한 코트에 열광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는 이들의 하얀 방역복만큼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옷이 어디 있을 것이며 전신을 방역복 한벌로 감싼 그들이 쏟고 있는 땀만큼 고귀한 것은 없다. 사람이 옷의 가치를 높일 수는 있어도 옷이 사람을 빛낼 수는 없다. 아직도 옷이 날개처럼 보인다면 좋은 안경을 맞추길 바란다. 그러고보니 콜린 퍼스도 이국종도 김사부도 안경잡이다. 아 문재인 대통령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