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뿌리는 이유

by 문성훈

무리를 벗어나 있다는 것. 그래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외롭지 않다면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무리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젊은 날에는 무리 속에 나로 만족했으며 언제부터인가 무리를 벗어나려 애를 쓴다.
충만하고 의미있는 삶의 조건에는 소속에 대한 유대감이 필연적이다. 이를 통해 친밀함을 나누게 되는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이 '관계 맺기'는 초면에 인사를 건네는 일로 시작한다.

한창 뛰어 놀 나이의 아이들은 마주치기만해도 제 소개로 하고 이내 친구가 된다.
심장이 고동치는 젊은이들은 옆 테이블 이성에게 다가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세상을 알만한 나이가 되면 다른 이의 세상을 들여다 볼 여력까지 잃기 마련이다. 한 사람이 다가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내게 안긴다는 의미인걸 알기 때문이다. 그건 삶의 무게만큼이나 버거운 일이다.

초식동물은 어미 자궁에서 빠져나오면서부터 걷는다. 도망쳐야 되는 운명을 익히 알고 있어서다. 육식동물은 형제들과 사냥을 놀이삼아 큰다. 언젠가 어미를 떠나야 하는 걸 알고 있다.
초식동물은 무리를 짓는다. 잡아먹힐 확률을 낮추고 싶어서다. 육식동물은 혼자서 다닌다. 먹이감을 나누기에는 사냥기회가 드물어서다.

초식동물의 뿔은 도망 칠 시간을 벌고 암컷을 차지해 새끼를 늘이기 위한 무기다. 육식동물의 송곳니는 단숨에 먹이감의 숨통을 끊어주려는 강자의 배려고 질긴 가죽을 벗기는 고단한 노동의 도구다.
사람은 초식동물로 태어나 육식을 하다늙으면서 절뚝거리거나 털이 빠져 굶어죽는 신세인지도 모른다.

내가 부러워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은 일찌기 혼자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왕따를 당해서가 아니라 무리를 왕따시킨 사람들. 그래서인지 주먹세계에서마저 김두한보다 스라소니에 애착이 가고, 김훈과 올리버 섹스의 글에 위안을 얻는다.

내가 사는 지구 행성에 제국으로 존재하는 단 하나의 국가 미국의 주가가 폭락하고, 유럽에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의 반인륜적 범죄가 멈추지 않지만 실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안타깝게도 별로 없다.
하물며 나는 느닷없는 질병으로 거리가 한산해지고 선동과 모략의 북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정국에도 귀를 닫고 싶어하고 멀찌감치 떼어놓으려 애를 쓰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허리마저 동강 난 한반도에서 웅크리고 있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여지껏 쓰지않던 마스크를 새삼 구하려고 약국을 찾지 않는 것이고, 이땅의 정의를 소리쳐 외치느라 목이 쉰 이웃들에게 물 한바가지 건네는 일이다.

그래도 가끔은 대문 빗장을 열고 소금을 뿌린다.
귀를 막아도 들리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내 삶의 여정을 함께 했던 친구들에 대한 연민이 남아서고 아직 문밖을 나서지 못한 자식들에 대한 부모된 의무라 믿어서다.
부정을 쫓는 이 요란스런 행동만 아니라면 큼지막한 자물쇠로 대문을 채우고 싶지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보니 그 또한 쉽지 않다.

내게 있어 정치는 강도이고, 언론은 협잡꾼이다.
인생이라는 어두운 골목을 지나는데 불쑥 나타나는 강도같은 놈이다. 겨우 발치 앞을 비추는 손전등 하나로 조심스레 걷는데 느닷없이 왼쪽 오른쪽에서 서늘한 칼끝을 들이댄다. 아무리 내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는들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전이긴 하지만 한때 이런 강도짓을 동네방네 소리쳐 외쳐주던 언론은 이제 강도와 공모해 선량한 사람들에게 사기치고 협박하는 협잡꾼이 됐다. 좌우 어느 구석에 도사린 강도편을 들든 흉악한 짓을 서슴치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외쳐 줄 우군이 없으졌으니 사람들마다 손나팔을 만들어 외쳐서 동네가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소란의 빌미는 협잡꾼인 자신들이면서 언론의 자유니 뭐니 하면서 항변하기조차하니 그 가증스러움이 극에 달한다.

그들도 한 때는 어두운 골목길을 비춰주는 가로등이었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가로등마저 깨져있으니 새 등을 끼우는 날까지 내 손전등을 끌 수는 없다.
그런 강도와 협잡꾼이 내 집 앞에라도 얼씬거리지 말라고 소금을 뿌린다. 소금을 뿌리며 하는 주문은 강도 당하는 내 비명소리고 협잡꾼을 대신한 외침이다.

신앙심이라도 깊었다면 이 심란함을 종교로라도 달래련만 죄스러워 그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적막하기까지 한 시기를 불자라면 동안거로 삼고, 천주교 신자라면 피정으로 여기면 한결 수월할텐데 굳이 문밖 출입을 독려당해 감염을 감수하고 예배를 봐야하는 한국 개신교인을 생각하면 이기적일 수도 있는 일이다.
공장 돌리듯 작업장을 멈출 수 없는 한국 개신교 지도자들의 입장을 굳이 이해하려면 못할 바는 아니나 설교문구 다듬는 시간에 성경외에 다른 책도 많이 읽고, 사색과 성찰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램을 가져본다.

나는 내 집 마당을 거닌다고해서 담장 밖 동네사람들의 아우성까지 모른체할 수는 없다.
우물이 메마르지 않는 한 두레박을 내려 시원한 물 한사발 건넬 테고 가끔씩 대문 빗장을 열러 소금을 뿌릴거다. 동네에 도적떼가 몰려 왔다면 뛰쳐나가길 주저하지 않겠다.

언제던가 그렇게 뛰쳐나갔던 적이 있었는데....
손전등대신 촛불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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