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처럼 인간 역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생물학적 조건이 공기, 물 , 햇빛 그리고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음식일텐데 공기, 물, 햇빛은 순수한 상태에 불순물이 많아 질 수록 좋아지기보다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성한 공기를 호흡하고 싶어하고 깨끗한 물을 찾는다.
아마 음식 역시 본연의 상태 그대로를 섭취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만 인류가 불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부터 문명은 다양한 요리를 탄생시켰고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 맛에 길들어져 있으니 다시 돌이키기란 불가능해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기후와 풍토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에서 길러지고 생산된 음식 재료로 최소한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최고일 수도 있겠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대표적인 음식이 김치라고 생각한다. 최근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외국생활을 했던 분이 한국에서는 김치를 찾지않았는데 외국에서 몇 년 살다보니 그렇게 김치가 먹고 싶더란 얘기를 했다. 그 이유가 한국인의 유전자 DNA속에 감춰져 있었건 위장관의 박테리아가 원했건 흥미로운 얘기다. 우리 땅에서 자란 토종 배추와 무우,고추를 재료로 근해에서 잡힌 새우나 조기를 곁들여 젖갈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박테리아와 미생물이 발효되면서 익힌 음식이니 사람이 하는 일이라곤 이를 버무리고 필요에 따라 장소를 옮기는 수고로움이 전부다. 이 과정 속에는 불로서 물성을 변화시키는 과정조차 없다.
얼마전 EBS 다큐멘터리 '백성의 물고기'에서 고등어가 소개되었다. 한때 백성의 물고기라면 명태였는데 이제 우리바다에서는 씨가 말랐고, 민어는 귀한 대접을 받게 됐으니 그나마 고등어가 대표격이 됐다. 우리가 흔히 먹는 고등어 중에 상당수가 노르웨이산인데 다행히 국내산과는 뚜렷히 구분되는 특징을 가졌다.
내가 찾는 고등어구이집에 바뀌지 않는 메뉴는 무생채무침과 김치콩나물국이다. 그날 무친 아삭한 무의 식감과 달작지근한 풍미가 아직도 겨울이면 바람 든 무우를 사오곤하는 아내보다 훨씬 오랜 경험과 노하우로 고른 재료임이 분명하고, 다양한 조리법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김치와 서민의 단백질 공급원이자 속풀이로 그만인 콩나물이 만났으니 또다른 별미가 아닐 수 없다.
음식에 따른 흥미로운 조사중에 정치적 성향에 따른 음식의 선호도가 다르더라는 결과가 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독재자들. 예컨데 캄보디아의 폴 포트는 코브라 수프, 히틀러도 비둘기의 혀와 간, 아프리카 말라위의 카무주 반다는 벌레를 말려 먹는 특이한 식성으로 자극성이 강하고 스태미나를 키워주는 음식을 주로 즐겼다는 사실이 호사가들사이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또한 미국 타임즈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온라인 주문 현황을 파악해보니 공화당 지지자들은 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와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는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채소가 많이 들어간 베지(veggie) 버거와 담백한 메뉴를 주로 찾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비슷한 조사결과를 본 적은 없지만 와인이나 양주는 우파, 좌파는 소주나 막걸리를 선호하지 않을까 싶고, 스테이크는 우파 두부는 좌파가 더 찾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예상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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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식성이 다를텐데 그것이 유전적인 이유에건 개인의 성향에 어떤 영향을 끼치 건 정작 중요한 건 음식에 담긴 정서가 아닐까싶다.
흔한 생선인 고등어지만 내 단골집은 연탄불에 굽는 거의 유일한 집이다. 허름한 식당 입구에서 비가 오건 눈이 오든 할머니는 고등어를 굽고 계신다. 내가 본 것만 20년이 넘었으니 훨씬 오래전부터 그렇게 구워오셨음이 분명하다. 잘 밀봉된 공장의 김이 아닌 기름 발라 구워진 김, 잘 고른 무로 정성껏 무친 무생채 무침 그리고 시원한 김치콩나물국은 어머니의 집밥을 떠오르게 하고, 연탄불에 은근하게 구운 고등어구이의 향은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오래전 고향집으로 나를 데려다 준다.
만약 언제나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시는 할머니를 식당입구에서 뵙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도시 재개발로 간판마저 흐릿한 가게가 번듯한 건물로 변모하고 그래서 연탄불이 아닌 오븐에 구어진 고등어구이를 대하는 날이 온다면 그래도 내 발길이 그 곳으로 향할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