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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16. 2020

의식주(住)-2

인간이 주거에 있어 동물과 같은 '조망'과 '피신'이라는 기본원리에 따른다는 이론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에서 발견한 사실에 불과하다.
사자의 이빨도 독수리의 날개도 없이 나타난 최초의 인류가 험난한 자연환경과 주위의 위험요소들로부터 안전을 도모하고 보호받기 위해서는 날씨, 재난등 환경의 변화를 관찰하기 좋은 장소를 택하고, 사나운 동물로부터 도망치기 수월한 위치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실내에서조차 주변의 시선을 피하되 자신은 모두를 관망할 수 있고, 가둬져 옴싹달싹 못하기보다 피난할 수 있는 동선상에 위치를 선호하게 된다.
추위를 견디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는 것, 생존의 기본 요건인 먹을 거리를 마련하는 것처럼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를 마련해서 자손을 낳고 몸을 숨기려는 본능을 거스릴 수 없어서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삶에서 집은 얼마나 이런 원리를 따르고 있을까?
TV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인으로 돌아간 사람들이야말로 이런 원리에 충실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심 한가운데 매연이 가득한 주상복합건물의 한 칸이 공기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땅에 지은 전원주택보다 더 비싸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집을 짓는다는 행위는 더 나아가 인류가 도시 혹은 촌락을 이루게 되는 과정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자연 동굴이나 자연에서 얻어진 재료로 지은 거처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사나운 동물의 먹잇감이 되는 걸 피했던 최초의 인류를 이러한 자연 환경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발전한 분야가 도시계획이고 건축이기 때문이다.

산과 강을 헤매는 수렵 채취생활을 하며 서로 떨어져 살던 인간들이 강가에 너른 땅을 개간하고 정착해서 농사를 짓게되면서 군집을 하게되고 군집생활을 위한 도시가 만들어지고 모여 모여 살 집을 짓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집을 짓는 행위 자체가 우리를 있게 한 자연환경과 차단시키는 학문과 기술로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차츰 인위적인 환경 즉 도로망 ,편의시설등이 중요한 입지 선정 조건으로 인식하게 되고 경제 활동과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기 유리한 지역을 선호하게 됐다.

그런데 누구나 자신이 머무는 도시나 집을 떠나 여행을 하게 되면 이러한 인위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언덕 꼭대기나 바다가 보이는 절벽에 지어진 고성이나 집에 감탄을 하게 마련이다.
전기는 들어오는지, 물은 어디서 길러야 할지 심지어 학교와 병원과의 거리등 현실적인 고려가 없다면 가장 온건한 형태의 자연환경을 선호하게 된다. 인간은 여전히 본능적으로 조상의 생사를 갈랐던 장소를 이루는 자연환경에 끌린다는 말이다.

현대인의 주거에 있어서도 울타리를 치고 정원을 꾸민다든지 집안에 화분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창을 통해서라도 그런 환경을 바라볼 수 있는 자연과의 접촉을 갈망하게 된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의 고층이 수십억을 호가하고 공원근처의 땅값이 비싸며 아파트 조성에 있어 조경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물론 이는 동일한 사회적 인프라를 갖췄다는 조건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보니 산에서 나물을 채취하고 계곡에서 물을 끌어쓸 수 있는 자연인의 넓은 집보다 도시의 방 한칸짜리 오피스텔이 더 비쌀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점은 집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자연환경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생겨난 건축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그리워하고 심리적으로 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 자연환경이라는 것이 척박한 환경 즉 아마존이나 빙하 지역이 아닌 비교적 온건한 상태의 자연을 일컫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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