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화내는 방법

by 문성훈

건강이 여의치않은 그녀는 마음이 바쁘다. 남편의 손때가 묻은 책들을 정리하고 훼손이 심한 책들은 비닐에 싸기도 한다.
주변에서는 기증할 책들을 상자채 넘기라고 하지만 남편이 남긴 책을 한 번도 손대지 않고 넘기는 것은 도리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녀이고보면 그 무엇으로도 이 경건한 의식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들을 오십, 육십 년 간직하셨어요. 김윤식 교수의 손때가 묻은 책들을 내가 한 번도 손대지 않고 넘기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았어요. 김윤식 교수에 대한 내 이별 형식이기도 하죠.”
그녀는 가정혜여사이시다. 사는 집을 제외한 재산 30억원도 저서 200권에 대한 저작권도 이미 기부를 했다. 30억은 그야말로 남편이 '목숨걸고 쓴 원고지 칸을 메워 모은 피'같은 돈이다.
그래도 천배 잘했다고, 유언을 남기지 못했지만 남편의 뜻도 그러했을거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당신의 이별 형식으로 사랑법을 배우고 '부부란 무엇일까?'를 생각할 뿐이다.



평생 표현에 서투르고 살갑지 않던 아버지셨다.
적어도 내가 뵈었던 모습에서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는 걸 보지는 못했다. 일찌기 외할머니께 두 분의 지난 결혼 스토리를 들었고 철이 들면서 어머니보다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얼마나 좋아하고 의지하는 지 알게 된 나로서는 언제나 의문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시고서 어머니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고맙다"거나 "수고했다"는 말을 끝내 듣지 못하셨음을 서운해하셨다.
"참 니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나보다 "
암 말기 선고를 받으시고 두 분의 거처를 내 집 근처에 마련해드렸다.
아버지가 투병하시던 1년 반은 내가 마지막으로 효자 흉내나마 낼 수 있도록 허락된 행운의 시간이었고, 성인의 눈으로 지난 세대의 부부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날로 쇠약해지시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지극 정성으로 돌보셨다. 매일 씻겨드리고 이전에는 한번도 해보지 않으셨을 면도까지 빠트리지 않으시니 항암치료로 머리숱이 빠진 아버지는 병자라기보다는 마알간 노승을 닮아가셨다.

허리도 좋지않으신데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시고 한 끼도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좁은 주방에서 아버지께서 그나마 삼키시는 사골을 고으시는 어머니가 고되시지는 않을까 혹여 어머니마저 오랜 병수발로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 시내 요양병원으로 모시는게 어떠시냐고 여쭤봤었다. 어머니는 단호히 거부하셨다.
마지막까지 당신이 돌보시겠다고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고 하셨다. 당신의 친구분들은 그렇게 하는 걸 봤노라고 하시며 당신만은 그럴 수 없노라고 하셨다. 자라면서 금슬좋은 두 분의 모습을 뵌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의외기도 했다.
"니 아버지는 없는 집에서 태어나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느라 세상사는 요령도 없고, 여자의 마음도 잘 다독이지 못하는 남편이었지만 나를 속이지 않았다. 평생 월급봉투를 축 낸 적도 없으려니와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너희들을 다 공부시켜 시집 장가 보낼 수 있었고 밤 늦게 들어와도 내가 속을 끓이지 않았다. 그렇게 평생을 부부로 연을 맺고 살았는데 내가 할 도리는 해야 된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다."라고 하셨다.

그렇게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체중은 줄었다지만 그래도 뼈마디 굵은 남정네를 안고 지고 목욕시켜 새 옷으로 갈아입혀 침대에 뉘인 자정을 넘긴 어느날 밤.
땀범벅이 된 어머니가 목욕재계하듯 씻고 나오셨을 때를 기다리기나 하신 것처럼 아버지는 숨이 잦아드셨다.
그날따라 왠지 발걸음을 뗄 수 없어 집으로 가지 않은 나와 내 연락을 받고 온 동생은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뵐 수 있었다. 아버지 숨이 멎으시자 어머니는 통곡를 하지 않으셨다. 두 눈을 감고 기도를 하셨는데 당신의 부처님께 극락왕생을 비셨는지도 모르겠다.
장례를 치르며 염을 한 분이 내게 그랬다.
"그렇게 오래 병상에 계셨다면서 욕창은 커녕 으레 있는 멍 자국 하나 없이 시신이 너무 정갈해서 놀랐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 아들인 나는 죄송하다고 잘못을 빌었고 어머니는 당신이 마지막까지 듣고 싶으셨을 "고생하셨다."는 말을 되려 아버지께 하시고는 그제서야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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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계신 큰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식물인간이 된 큰어머니를 10여년동안 집에서 혼자 병구완을 하셨다.
아무리 큰 집안 행사가 있어도 식사시간이면 큰어머니 식사를 챙기러 가셨고, 필시 혼잣말이 되고 마는 대소사를 끊임없이 들려주고, 돌아오지 않을 대답일 걸 알면서도 어떻느냐 어찌할까 의견을 물으셨다.
자식들은 그런 모습을 뵈며 혀를 내두르고 경외함마저 느꼈다.
나는 지난 세대의 남녀간 사랑, 부부의 얘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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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교수 부부와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 건 어지러운 세상에 더해진 추한 소식때문이다.
이런 사건은 입에 올리기도 뭐하지만 이전에도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테니 새삼스러울 거야 없다.
'n방 사건'이라고 명명을 했던데 어떻게 불리던 간에 내가 기억하는 이전의 연예인 성동영상 유출, 검찰 고위 인사의 별장 사건, 명문 의대생들의 후배 집단 성폭행, 국회의원 아들인 판사의 몰카, 성동영상으로 부를 축적한 기업의 회장 갑질 폭력, 최근의 행정고시 합격생의 몰카 판결에 이르기까지 그 궤를 같이 하는 사건이다.

n방 사건에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들이 격분하고 피의자 신상공개 국민청권에 100만명을 넘겼다.
그런데 피해자가 될 수 있는 20대 딸과 피의자가 될 수도 있는 20대 아들을 둔 나는 26만명에 달하는 피의자을 공개하고 주범을 엄벌에 처한다면 다시는 이런 사건이 줄어들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일벌백계가 진정한 해법이라면 나 또한 이슬람국가처럼 공개태형이나 처형에도 동참할 의사가 있다.
그런데 아니란 걸 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한다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우리 한국사회를 다시 돌아 보자. 대부분의 피의자가 20대 중반이라고 들었다. 주범역시 그 또래이고 공범중에는 사회복무요원도 있다고 했다.
나는 무엇보다 이전의 사건 피의자들 중 상당수가 사회적 엘리층이었던 것에 놀랐었고, 지금이나 그 때나 젊은 세대가 많다는 사실에 심란하기 그지없다.
우리 사회를 나무라고 치면 새 순이 썩는 현상으로도 보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국의 20~30대는 가정보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고, 입시지옥을 통과하지 못하면 루저라는 인식을 갖게 된 세대다.
밥상머리 교육보다는 성적이 오르면 칭찬을 하고, 인성이냐 어찌되었건 상위권대학에 진학시키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는 소리를 주고받는 환경을 만든 부모 세대에게 문제는 없는 것일까?
나는 책임소재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문제의 핵심을, 근원적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소위 좋은 학원가와 입시에 유리한 학군을 찾아 이사를 다니고 그 지역 땅값을 올려놓은 대열에 합류한 적이 있다면, 아이의 인성보다는 성적에 골몰하느라 많은 대화보다는 아이의 학원순례를 마다하지 않은 엄마가 흥분부터 해서는 안된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접대여성이 있는 유흥업소를 드나들면서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고, 세속적인 출세와 부자가 되는 길이 성공의 척도고 행복의 기준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 아비라면 고개를 들지 말아야 한다.
비싼 노트북은 사주면서 감명깊었던 책 한 권 건네지는 못했고 인격체로서 품위를 잃지않고 어떻게 살아나갈 지 평소 생활태도에서 보여주지 못한 부모라면,
서로를 존중하고 충실하며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부부라면 자기반성부터 해야 한다.

종기의 고름을 짜냈다고해서 내 몸이 건강해진 것은 아니다. 체질이건 외부 요인이건 그 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어딘가에서 종기가 생길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
나무의 새 순부터 썩는다면 뿌리가 시원찮거나 공기가 맑지 못해서다. 누군가는 그래도 파릇하고 건강한 새 순이 더 많다고 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몸인 나무가 병들었으면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썩은 순을 꺽어도 어디선가 돋아날 게 분명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남 탓을 하고 징벌에 연연하는 문화가 팽배해져 있다. '탓'보다는 '원인'에 주목하고, '징벌'만큼 '대책'에 골몰했으면 한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은 추상같으되 사유는 깊어지는 계기가 마련되길 간절히 바란다. 자식들을 소중하다고 감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바른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당부하며 키웠는지, 나부터 그동안 올바르게 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했는지, 자식들에게 비춰지는 가장 가까운 성인남녀인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땠는지 돌아봐야 한다.
강 건너편 어디에 도착해야 할지 가늠도 하지않고 거친 물살탓만 하며 노를 젓다보면 엉뚱한 데 도착하기 마련이다.

삿대질에만 여념이 없고 격분하는 사람들만 눈에 띄는 것 같아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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