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by 문성훈

뭇매를 맞을 각오는 되어 있다. 나 역시 남자라는 이유라면....
그런데 화산이 폭발한다고 해서 땅 밑에서 꿈틀거리는 마그마가 식지는 않는다. 파르르 떨며 새된 목소리로 격앙된 감정을 분출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거기서 사고가 멈춰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싶다.

텔레비전인지 텔레그램인지 용어조차 헷갈리고, 20대 남매를 둔 아비지만 어쩔 수 없는 남성이기에 한데 묶여 '한국 남성의 성인지 감수성'을 질타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감수하겠다.
아니 그렇게라도해서 내 딸이 안전해지고 아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성범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마다할 부모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아니란 걸 알기에 한편으로 씁쓸하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쓴 것처럼 갑갑하다.

많은 여성들이 분개하고 불안해하는 심정을 이해한다. 이 역시 꼰대소리를 들을 나이가 된 남성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면 수긍할 수 밖에 없다. 또 일부 사람들이 한국의 성평등이나 성범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것이 나라을 사랑해서라고도 믿고 싶다. 그런데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다.
실체보다는 상황에 집착하고 원인보다는 결과에 흥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엉긴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갈 끈기를 얘기하기보다는 가위를 들고 자르려고만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n번방 운영자의 신상이 공개됐다. 가입자 명단이 공개될 수도 있다고 한다. 범죄수익이 수십억원에 달한다고도 하고, 가입자가 26만명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었다.
운영자는 법정 최고형에 처하고 가입자는 신상까지 공개되길 바란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조주빈이 한 사람일까? 제2, 제3의 조주빈을 매개로 번진 몹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26만명 뿐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 모두를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시킬 수는 없을텐데 그 이후는,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염자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목소리는 적다. 더욱 걱정스러운 건 미성년자를 포함한 피해여성들이 그들의 마수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그들을 수용하고 안식처를 제공해 줄 수 있을지 혹은 다시는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을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기자들이 왜 조주빈에게 마이크를 줬는지 이해는 하면서도 용서할 수는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일반인인 나도 예상할 수 있는데 굳이 그래야 했을까?
그의 답변이 과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의문스럽지만 지금까지의 기자들 행태를 지켜봐왔으니 억지로 삼킬 도리 밖에 없다. n방 사건과 조주빈을 기화로 정치, 사회영역으로 범위를 넓혀가며 언론사 입맛에 맞게 확대 재생산, 소설을 써야하는 의무감으로 무장된 기자들이니 당연할 수도 있다.
나는 조주빈이 사죄한 대상인 '피해자'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가입자인 회원들인지 혹은 성착취를 당한 여성들인지 알 수가 없다. 이어진 '미성년자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데다 생뚱맞게 언론사 사장, 정치인, 기자이름을 언급한 데서, 그리고 그가 구사한 단어 '악마의 삶'에서 유추해 볼 따름이다.
추측컨대 조주빈은 심장이 저릴만큼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
기자들은 그에게 또다른 이벤트의 기회를 제공했고 그대신 가십성 기사거리 하나를 더 얻었을 뿐이다.

조주빈 역시 얼마전까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가입자들 역시 밝혀지진 않았지만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일반인일 것이다. 심지어 피해 미성년자까지도 평범한 이웃의 자녀가 분명하다.
그런데 결코 극히 일부일 것만 같지않은 이런 일들이 왜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검사가 성접대 동영상에 찍히고, 판사가 몰카를 찍고 점주가 알바생을 성폭행하는 사건들이 지면을 장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 사회가 결정장애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판단을 해야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특히 법이나 도덕에 관한 판단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 판단은 개인마다 형성된 인격이나 가치관에 따르기 마련인데 현대사회에서는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돈, 명예, 인간관계, 인륜, 교육, 법, 도덕, 종교 등등 이 많은 요소들을 수평으로 늘어놓고 이 모두를 충족하는 삶이 이상적이라는 걸 아는 우리는 언제나 선택 앞에서 주저하고 난감해한다.
현대인이 윤택해진 문명 속에서도 정신적인 방황을 하고, 다양성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가치관에 있어 수직적 위계질서를 올바르게 세울 필요가 절실해졌다고 생각한다.
우선 순위부터 열을 세워 상황을 판단하고 선택하는데 결정장애를 앓거나 충동적인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한다.
나보다는 우리, 돈보다는 양심, 법보다는 윤리가, 종교보다는 상식을 우위에 놓는 가치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간에 전반적인 기류가 이렇게 형성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안전하고 평온한 삶은 요원하다.
부모로써 자식에게 어떤 삶이 바람직한지 제대로 일깨워줬는지, 우리는 인간관계의 우선순위나 평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일상에서 쉬운 방법, 유불리만 쫓아 정작 스스로는 성찰과 사유를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피는 생활태도가 중요한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행복에서도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개인마다 자신이 바라는 행복의 요건을 개인적 만족도나 상대적 평가, 재산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 자식의 대학 순위, 외모의 미추 그 어디에 두건 이 모두를 충족하려 할 수록 행복은 점점 멀어지기 마련이다.
이 역시 우선 순위를 가려서 수직적으로 세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느 항목에 더 비중을 두고 어디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건 항목을 줄이고, 기준점을 최소한으로 내려놓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하면 가장 높은 항목부터 빨리 충족되고 아랫 항목으로 넘어가기 수월해 진다.
가장 절실한 행복의 요건부터 만족하기에 이미 행복을 절감하며 삶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정서적인 불안은 과잉행동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일부 사람들이 26만명의 가입자를 들어 나름의 셈법으로 한국 남성의 1/10에 해당할 수 있다라던지, 세계에서 한국이 유독 이런 범죄가 잔혹하고 만연하다고 주장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나 역시 이런 유형의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마땅하고 사회적인 단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법체계나 법집행에 대해 문제가 있고 미흡하다는 점은 누구못지않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 반드시 정비하고 시정해야 한다.
하지만 부정확하거나 부실한 근거 혹은 자신만의 감정에 휩싸여 혐오스런 발언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과잉된 행동을 하거나 이 문제를 들어 다른 여타의 영역까지 확대하는 양상은 달갑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잉 행동은 불안을 증폭시킬 따름이고 문제의 확산은 본질에 접근하고 완전히 해결하기도 전에 주의를 산만하게 흐트리기 때문이다.

엉긴 실타래는 포기하지 않고 집중해서 끈기있게 풀어야지 과격하게 잡아당겨서도 가위로 자르겠다고 덤벼서도 안된다.
악의 바이러스를 전파하거나 감염되지 않기 위한 사회적 마스크를 씌워주고 써야 한다. 함부로 떠드는 입에도 마스크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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