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에서 가정교사가 됐다는 건 승격이 분명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는 걸 알기에는 아직 어리기도 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학교앞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점심 시간동안만 하는 일이었고, 삼시세끼 기숙사 밥에 질릴만도 했으니 일을 마친 후 짜장면, 짬뽕, 볶음밥을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했었다. 내가 쉽사리 이 일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지원자가 별로 없어서였다.
배달주문은 주로 대학교에서 들어온다. 한창 여대생 꽁무니 쫓고 멋부리고 싶은 나이에 철가방 싣고 88오토바이를 몰아야했으니 내 또래 남학생들이 다들 기피했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따위야 아랑곳하지 않는 내가 적격이었다. 그렇게 철가방 하나는 뒤에 싣고 또 하나는 한 손에 쥐고 나머지 한손 운전으로 배달에 나서는 호기를 부릴 즈음. ㅇㅇ반점의 주인인 여사장이 뿌리치기 힘든 제안을 했다. 하나뿐인 아들 과외를 맡으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보수도 넉넉했을 뿐만 아니라 강의을 마치고 할 수 있었다. 냉큼 그러마 받아들였다.
그동안 과외 선생이 몇 번 바뀌었노라 했는데 흘려들은데다 중고생도 아닌 초등학교 6학년 정도는 가르칠 수 있으려니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첫 수업부터 깨달았다. 할머니가 키우다시피하는 경찰서 형사반장 아버지와 중국집 사장 어머니의 외동아들을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왜 그렇게 과외선생이 자주 바뀌었는지...
좋게 말해서 천진난만한데 어려운 어른도 없고 주위 산만하기 이를데 없었다. 하나뿐인 손자를 감싸고 도는 할머니도 넘어야 할 벽이었다. 뭐 하나라고 가르치려들면 엉뚱한 질문을 하질 않나. 내준 숙제는 손도 대지 않았으면서 당당했다. 한번은 수업중에 "잠깐만요. 지금 만화영화할 시간이에요"라면 당당하게 TV를 틀어서 나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나흘만에 그만두겠다고 했다. 녀석의 어머니이자 중국집 사장인인 그녀가 어르고 달랬다. "여지껏 선생님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어떻게 좀 해봐. 성훈학생이라면 잘할것 같은데... 내가 넉넉하게 챙겨줄께" 그놈의 돈이 뭔지... 아무튼 나는 다시 과외선생 노릇을 하기로 했다. 단,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뭐라고 해서는 안된다. 내가 수업중에는 할머니가 집에서 나가계셔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물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후로 녀석의 악몽이 시작됐다.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내게 인사 제대로 안했다고 쥐어박히고, 수업중에 딴청 핀다고 얻어터지고 존다고 손바닥을 맞았으며 숙제를 안한 날은 초상날이었다. 그렇게 녀석에겐 눈물, 콧물 범벅인 나날의 연속이었다. 결과적으로 녀석은 로봇이 됐다. 아무리 눈물로 호소하고 나의 부당함을 고자질해도 부모가 할머니가 들어주질 않으니 학교 숙제는 안해도 내가 내 준 숙제는 밀리는 법이 없었다. 나중에는 가르치지도 않고 예습할 페이지만 알려주고 숙제만 잔뜩 내서 검사하면 되는 나로서는 음풍농월의 시절이었던 셈이다. 당연히 성적도 조금씩 오르고 무엇보다 공부하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해나갔다. 팔자에 없던 과외선생을 그만 둔 이후로 그 집 소식은 들을 길 없지만 가끔은 친구들과 그 시절 얘기를 하다가 혼자 피식 웃는다.
대학 강의가 코로나19 여파로 동영상과 원격강의로 전환되다보니 여기저기서 안좋은 소식이 들린다. 교수들이 강의 대신 유튜브 동영상 한편 틀어주질 않나, 교재의 페이지만 알려주고 공부해서 과제로 제출하라고 해서 대학생들의 원성이 높다고 한다. 어느 대학에서는 교수가 집중시킨답시고 카메라 앞에서 노래 한곡을 뽑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교수를 직업이라고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에 빠져 있어서다. 참된 스승이 되기보다는 윗사람으로 대우받는 것에 익숙해서다. 무엇보다 명심할 건 그들은 초등학생이 아니다.
AI시대에 대학생들을 로봇 꼭두각시 취급해서야 되겠는가. 그들은 동등한 성인이고 날카로운 비평가이며 비싼 등록금을 낸 소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