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관(雷管)-1

by 문성훈

사람마다 건들지 말아야 할 감정선이 있다. 어떤 이는 넘어서면 후환을 감당하기 힘든 그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다니는 재주를 지녔다.

엄마는 내가 지근에서 뵌 가장 탁월한 선수셨다.
유독 선친께만 그러셨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영화장면 같을 때가 많았다.
천상 경상도 사내인데다 한 카리스마하는 선친을 건드는 유일한 인물이 엄마셨다.
선친은 잔소리를 싫어하셨는데 당신께는 같은 얘기가 두번 연속되면 잔소리셨다.
그런데 아들이 내가 봐도 선친은 엄마가 같이 사신 날만큼 다듬어 만든 분이셨다. 에둘러 말씀하는 법이 없으셨고 아니다 싶으면 상대가 누구든 가리질 않으니 아마 아내로서는 질풍노도 사춘기 자식을 보는 심정이셨을 것이다.

게다가 출근하실 때면 와이셔츠 자락이 삐져나와 있거나 양말이 바지를 먹고 있기 일쑤셨다.
엄마로서는 지방 소도시의 고등학교 선생이니 주변의 이목에도 신경 써야하고, 외관까지 챙겨야 할 정도니 자연히 들려드릴 얘기가 많았다.
선친께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당신 기분을 살펴 말을 건네더라도 같은 얘기가 두 번째라면 여지없이 잔소리였다.
간혹 경계선을 살짝 넘기는 바람에 폭발하는 날이 있긴 했는데 그때마다 용케 지나가는 게 신기할 때가 많았다.

언젠가 내가 엄마에게 왜 그러시냐고 여쭤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사람이 아까워서 그런다고 하셨다.
선친이 조금만 누그리면, 세상과 타협하면, 신경쓰면 훨씬 빛이 날텐데 하는 욕심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 고비를 잘 넘기시는 것 같더라라고 비결을 여쭤보니
"니 아버지는 9부 능선만 안 넘기면 돼. 그것도 같이 살면서 터득한거야. 설사 잘못해서 폭발하면 대꾸없이 벙어리행세하면 또 금새 가라앉거든..."
아버지의 자식이라선지 내게도 분명히 그 감정의 '9부 능선'이 있다.
젊을 때보다는 훨씬 높아져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감정선만큼이나 건드려서는 안되는 뇌관같은 사람이 있다.
어느 오락프로에서 절친하다고 알려진 이수근이 강호동의 가족 얘기를 농으로 건넸는데 강호동이 "가족은 건들지 마라"며 으름짱을 놓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강호동의 가족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강호동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그런 사람이다.
누구나에게 가족은 그런 존재다.

남이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 내게는 故노무현이 그런 사람이다.
저만치 올려다보이는 대통령이 자신의 옆 자리에 다가와 앉아있는듯한 느낌을 가져본 국민이라면 안다. 국민에게 대통령도 보통 사람이고, 같은 시대를 앓는 평범한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고 떠났다.
나는 그의 팬이다. 어쩌다보니 그에 대한 논문 한 편은 족히 쓰고도 남을만큼 파고 들다보니 일각의 왠만한 비난과 비하발언에는 콧웃음도 아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9부능선이 지리산에서 백두산만큼이나 오른 셈이다.
나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떠난 사람중에 노무현이 있다면 남은 사람중에는 문재인이 있다.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이 친근하게 국민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면, 고개숙인 국민의 어깨를 감싸고 일으켜 주는 대통령이 문재인이다.
아직 재임중이니 그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좀더 미뤄야겠지만 나로서는 그렇다.
대통령도 서투르고 화내고 국민과 함께 울 수 있다는 걸 노무현이 보여줬다면 문재인은 좀더 다듬어 화를 삼켜 나중을 기약하고 다시는 국민이 울지 않게 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무현이 동질감을 느끼게 해줬다면 문재인은 자긍심을 심어준다.
역대 어떤 정부도 이렇듯 차분하고 묵묵하게 머슴처럼 일을 해 왔으며, 어느 대통령도 한국의 위상을 이만큼 올려놓지 못했다.

문재인은 인기가 많은 대통령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메르켈을 비롯한 세계 정상들이 남달리 그를 대우하고 코로나 대처에는 외신이, 빌 게이츠가 칭송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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