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라는 풀

by 문성훈

봄 색시가 잠자리날개 같은 치마를 나풀거리는가 싶더니 동장군이 심술을 부리는지 두터운 옷을 다시 꺼내게 할만큼 제법 쌀쌀하다.

봄이면 나는 한반도가 축복 받은 땅임을 실감한다. 산과 들, 논두렁에 온갖 먹거리 풀들이 고개를 내밀어 저마다의 장이 선다.
봄은 나물의 계절이다. 특히 나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 많은 봄나물을 먹어봤다.
한국의 '나물' 문화는 세계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다양하다.
모든 나라의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를 드러낸다. 산이 전 국토의 70~80%를 차지하고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다보니 식량부족과 기근을 견디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채소를 많이 먹게 됐다.

그런데 채소를 다루는데 있어 한국은 여느 나라와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서양은 샐러드처럼 생으로 먹는다. 열량도 높고 많이 먹을 수가 없다. 육식 위주 식단에 들러리 정도의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은 채소를 기름에 볶고 일본은 소금에 절인다. 기름에 볶아 몸에 좋을 리 없고 절이는 방법의 최고봉은 한국의 김장이다.
한국은 물이 좋아 주로 데치고 양념에 무쳐 먹는다. 소화도 잘되고 영양 손실도 적은 선조의 지혜가 담긴 조리법이다.

우리나라에는 나물이 되는 식물이 얼마나 종류가 많고 조리법이 다양한지 아직도 먹어보지 않은 나물이 많다.
그중에 최근에 알게 된 '지칭개 나물이 있다.
한국인만 먹는다는 쑥을 비롯해서 달래, 냉이, 씀바귀, 두릅, 머위, 취나물, 엉겅퀴, 원추리 외에도 먹어보지는 않았어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정겨운 이름의 보자기나물, 종지나물이 있기는 한데 '지칭개'는 그 이름만큼이나 생소하다.

스쳐지나듯 보게 된 TV프로를 통해 '지칭개 나물'을 알게 됐다.
'지칭개'라는 이름의 유래를 검색해보니 여러 설이 난무한데 내게 다가오는 그럴듯한 해석은 '예전에 상처 난 곳에 잎과 뿌리를 짓찧어 바르던 데서 유래' 됐다는 것이다.
소염, 해독작용이 있는 약용식물이어서 그런 용도로도 쓰였던 모양인데 나로서는 그보다 TV에서 시골 아낙이 이 식물을 다루어 나물을 무치고 된장국을 끓이는 걸 보면서 더 설득력을 갖게 됐다. 지칭개 매우 쓴 맛이 나다보니 살짝 데쳐서 짖이기듯 빠는데 힘주어 빠득빠득 짖이겨야 한다는 데서 '지챙개'라는 말이 나왔다는 설이다.
그렇게 녹색물이 여러번 빠진 지칭개를 꼭 짜서 콩가루와 버무려 된장국을 끓이기도 하고 고추장 된장을 섞어 들기름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쳐 상에 내면 비로소 '지칭개 나물'이 된다.
그 조리과정을 보고있자면 도저히 식당에서 만나볼 수 없는 정성과 노력이 깃든 '슬로우 푸드' 나물이다.

한 나라의 음식이 문화를 드러낸다면 그 문화에서 살아 온 사람들도 음식을 닮아가는 것 아닐까 싶다.
한식 상차림은 채식과 육식이 비율이 8:2 정도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린 풀로 나물을 무쳐 먹고 산 한국인은 그래서 나물을 닮았다.
자원없는 나라에서 무엇 하나 소홀히하지 않고 갖은 양념을 해서 세상에 내어놓아 경제 발전을 이뤘다.
야무진 손 끝으로 그 하나 하나를 씻고 다듬고 데쳐 나물같은 명품을 만들어 낸 민족이다.
써서 버려질 풀 하나조차 짖이겨 자연의 풍성함을 고스란히 상에 올린 슬기로운 국민이다.

최근 한국의 예산을 틀어 쥔 기재부의 관료주의에 물든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재난 지원'와 '복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곳간 열쇠를 거머쥔 마름의 얄궂은 심보같다.
하지만 기재부는 행시를 거친 공무원 중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뒀거나 학벌이 좋아야 갈 수 있는 요직중에 요직이다.
말하자면 '지징개' 같은 풀이고 나물 재료다. 버리지 말고 야무지게 짖이기고 빨아서 관료주의라는 쓴 물을 빼내고 갖은 양념으로 버무리면 우리 국민의 입맛에 맞춘 마름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지칭개나물은 쌉싸름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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