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흐르고 삶은 말라간다. 나는 오늘도 버스를 타고 어제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를 풀다 점심 메뉴를 고민할 것이고 밤이 깊어서야 떠났던 자리로 돌아와 고단한 하루를 접을 것이다.
하루에도 여러 건 겹쳐있던 술자리를 떠난 지는 10년이 다되어가고, 한 주에 두번까지 나가던 페어웨이를 밟은 지는 4년, 한 달에 한번은 어김없이 찾아오던 동문회에 가지않은 지도 3년이 넘었다. 연말이 안왔으면 되뇌던 송년회는 이제 먼 기억속에 머물러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사소한 빌미만 있어도 약속을 잡았던 주변인물들의 스마트폰에 내 전화번호가 남아있을까 궁금할 지경에 이르렀다.
굳이 펜데믹이 아니었어도 나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찌감치 시작했던 탓이다. 국가의 역사 더 나아가 민족 아니 인류의 역사는 어김없이 흘러간다. 그 거대한 강줄기 혹은 해류에 흔적도 남기지 않을 내 역사, 내 삶의 실개울은 서서히 말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조바심이 일면서 일상이 바뀌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자리, 시간을 내고싶지 않은 일, 그리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차츰 내게서 떼어놓고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정리정돈으로 명성을 얻은 곤도 마리에에게 배운 것이라곤 "설레지않으면 버려라"라는 한 문장이다. 그녀 역시 버리거나 되팔기위해 쇼핑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때문에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는가.
나는 보다 나은 만남을 갖고 더 큰 일감을 찾기위해 익숙했던 것들을 정리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의 전화번호를 채우기위해 저장된 연락처를 지우는 일도 없다. 나를 일깨우거나 위로받거나 격려할 수 있는 만남, 새끼발가락부터 짜릿해져오는 일이 아니라면 하고 싶지 않고, 혹시나 마주칠까 길모퉁이에 숨어있던 첫사랑의 기억처럼 나를 설레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 이상 내 안에 들이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니 채우기위해 비우는 건 아니다. 비우기위해 비운다. 이제는 그래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삶의 실개울은 말라가고 있고 장마비는 다시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 차갑고 깨끗한 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바닥돌에 이끼가 끼게 할 수는 없으니 물 위에 떨어지는 낙엽도 이고 흘려보낼 참이다. 마침내 민바닥을 드러나고 더 이상 내 시간이 흐르지않을 즈음이면 그래도 쓸만한 돌멩이 몇 개는 줏어갈 수 있게 하고 싶다. 내 자식이어도 좋고 누구라도 상관없다.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하루를 보내지만 어제와 같은 오늘이 아니길 바라고 오늘같은 내일이 오지 않게 하려고 한다. 가슴 설레는 일을 하고, 바른 생각을 찾으며 기대되는 만남을 그리는 삶을 위해 나를 비우고 쓸어낸다.
덜어내고 비우는 일이 어디 쉽기야 하겠는가. 오랫동안 옥죄던 퀘퀘묵은 관습과 도리, 의례적인 인사, 서로의 필요에 의해 새겨진 인상을 비우고 털어낸다. 내 속 깊숙히 박힌 허영과 자존심, 이기심과 욕심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서랍에 넣고 단단히 잠궈 둘 참이다. 그래서 영원히 흐를 역사라는 큰 물에 희석되고 정화될 망정 오염된 물을 흘려보내지는 않아야겠다. 언제 마를지 모르는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길 참이다. 온전히 혼자되는 연습이 필요하고 익숙혀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