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을 극복하는 법-2

by 문성훈

참 희안한 일이다. 뚜벅이로 산지 두 해가 지나고보니 걷는 일이 많다.

도심에서 맨땅이 드러난 곳을 지날 일이 없다보니 인도에 놓여진 보도블럭을 밟고 다닌다. 무심히 지나치던 보도블럭에 신발 밑창이 긁힐 때가 있다. 때론 왼발, 그렇잖으면 오른쪽이다.
물끄러미 내가 지나가야할 인도의 보도블럭을 보다가 마치 중요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반대편 인도로 건넌다. 한쪽 신발 밑창이 닳았을 지 모르니 다른쪽 신발도 닿게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걷다보니 유달히 다른 거리보다 출근길 인도의 경사가 급한 편이란 걸 알게 됐다. 기우뚱하게 걷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한쪽 신발 밑창이 높은 쪽 보도블럭에 닿는 것이 당연하다.
건축으로 밥벌이를 하는 나로서는 희안한 일이다. 지역마다 다른 기준으로 보도블럭을 깔지는 않을텐데 정해진 물매대로 도로쪽으로 낮게 깔아야하는 인도의 경사가 저마다 다른 것이다.

'그래 지금 세상이 이런 것일거야...'
혼자 중얼거리며 걷는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울어진 세상을 살고 있다. 지구가 둥글다지만 넓다보니 느끼지 못할 뿐인데 쪼개진 나라마다 기울기는 다르다.
우리나라의 기울기는 몇번째쯤일까 궁금해진다.

기울기는 저마다의 삶에도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끼친다. 다만 아무런 생각없이 걷듯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왜 그럴까 궁금해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집요하게 요구할 수록 기울기는 완만해지고 비슷해질 게 분명하다.

나는 곧게 걷고 싶지만 인도는 기울어있다. 그래야지 억수같이 비오는 날 진창을 걷지않는다. 합리적이고 불편하지 않은 기울기는 필요한 이유다.가끔은 차도를 건너 반대편을 걷는 현명함은 자신의 몫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기울기는 너무 급하거나 중간쯤이 내려앉아 있는 듯하다. 걷기 불편하거나 물이 고인다.
그 때마다 내 삶이 신발 밑창처럼 한쪽만 빨리 닳거나 튀긴 물에 얼룩이 진다.

오랫동안 무심코 걷다보면 무의식중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행동이 생각을 지배한다. 잠깐 멈춰 서야 할 때 멈추지 않고, 완만하게 숙고해야 할 것을 서두른다. 천천히 해도 될 일을 먼저 해치우려 들고 오히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을 미룬다.
제대로 보도블럭을 깔아야 하는 자들의 의도가 숨어있고 사심이 있어 그렇다.
과거 우리는 그렇게 놓여진 길을 한동안 묵묵히 걷기만 했다. 지금은 서서히 진상이 드러나고 책임을 묻기 시작하니 한편 다행이다.

도심은 늘 번잡하다. 거리는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원래 우리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않은가.
진실은 복잡하고 사람들은 기다릴 줄 모른다. 신발 한 축이 심하게 닳아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이 닳고 있다. 한 축만 닳게 둬서는 안된다. 한 컬레뿐인 신발 아닌가.
급한 기울기의 보도블럭은 서둘러 들어내고, 패인 자리는 돋워야 한다. 건너편으로도 걸어봐야 한다.
건너편에서 기우뚱하게 걷고있지만 자신만 모르는 사람을 손가락질하기보다 건너오라고 손짓하는 친절도 잊지 않아야 겠다.

걷다가 세상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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