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 얘기다. 인테리어를 하다보니 다양한 프로젝트를 접하게 된다. 주택부터 전시장, 병원, 오피스.... 한 분야에서 30년을 바라볼 즈음이 되니 안해 본 작업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회사는 돈이 되고 직원은 죽어나는 현장이 있다. 백화점이나 전시장이 그런 예인데 짧은 기간에 밤낮을 가리지않고 24시간 작업을 해야하는 프로젝트들이다. 백화점은 상전들이 많아서, 전시장은 제약조건이 까다롭다. 업종별로는 패션매장이나 프랜차이즈업계가 힘든데 디테일이 까다롭거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해야하는 고된 작업들이다. 그나마 젊었던 직장생활동안의 경험으로 내가 사업을 하고부터는 삼가하는 프로젝트들이 대개 이러하다.
인테리어회사의 실무를 책임지는 실장으로 진두지휘를 하던 때였다. 이름만 대면 아는 수입 청바지 매장을 맡아 진행했다. 의류 본사에서 야심차게 준비하는 중심상권 신촌의 로드샾인데다가 새로운 메뉴얼을 시도하는 첫 매장이었다. 나 역시 디자인과 설계가 채택은 됐지만 새롭게 시도하는 작업이 많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패션업계는 인테리어회사 입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까다롭고 말들이 많은 현장이다. 그만큼 인테리어가 매출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도 할 수 있고 디테일에 민감하다. 게다가 당시로는 엄청난 임대료로 인해 공사기간도 무척 짧게 주어진데다가 공사차량 진입도 어려운 시내 중심이었다. 소음이 나거나 차량이 드나드는 것은 주로 야간을 이용했다.
오픈 전날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마지막 점검과 검수를 위해 회사를 출발해 현장으로 갔다. 오픈은 다음날 오전 10시였다. 아니나다를까 현장은 작업자와 감독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체크리스트를 점검하면서 현장지휘에 열을 올리다보니 두 세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의류회사 관계자와 직원들이었다. "ㅇㅇ는 어디 있어요?" "ㅇㅇㅇ는 아직 도착 안한 건가요?" "여기는 아직 안됐네" "이 컬러는 별론데..." 한사람이 한마디를 하면 열마디가 되고 두 세마디를 하면 아우성이 될 참이었다. 그들이 뭐라고 할 때마다 현장소장과 직원들은 설명하고 알아보느라 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갑과 을의 관계란 으레 그러하다.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꾹꾹 누르고 있었다.
사달은 그 회사 책임자급이 도착하고서 생겼다. 그 회사 직원들이 초등학생이 선생님께 고자질하듯 이미 했던 얘기들 가령 이미 설명을 들었고 순서에 따라 할 작업들인데 경쟁하듯 그에게 고해바치기 시작했다. "ㅇㅇㅇ가 아직 안왔구요..." "ㅇㅇ도 진열해야 되는데 아직 안됐고..." "아직 간판 불이 안들어오는데..." 현장은 북새통을 넘어서서 아비규환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온갖 짐과 가구들도 옴짝달짝하기 버거운데 작업하고는 관계없는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통로를 점령하고 이곳 저곳을 손가락질하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시끄러운 건 참을 수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감놔라 대추놔라 여긴 어떻고 저긴 아직 멀었다면서 우리 직원들을 시달리게 하니 그렇잖아도 정신없는 그들인데 혼이 반쯤은 나가보였다.
마침내 폭발했다.
"당신들 다 나가~!" 고함을 질렀다. "네? 뭐라고요?" 어이없다는듯 슈퍼바이저되는 여자가 되물었다. "여기서 다 나가라고... 현장에서..." "아니 실장님. 우리가 누군줄 알고...." "아니까 다 나가란 것 아닙니까. 아직 여기는 내 현장이고, 인수인계를 하지 않았잖습니까. 일할 수 있게 다 나가란 말입니다" "우리는 본사에서 나온..." "어찌됐건 내일 오전 10시까지 마감하면 될 것 아닙니까. 아침 8시에 문 열테니 그때 와서 지적할 것 있으면 지적하고, 말하고 싶은거 있으면 하세요. 야~! 이 분들 다 내 보내" 몰아내듯 그들을 매장에서 내 보내고는 문을 걸어잠그게 했다. 창밖으로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 매장을 가리키며 뭐라고 항의하는듯한 제스쳐가 보였다.
"실장님. 자~알 하셨습니다. 그런데 곤란하지 않으시겠어요?" 벗겨진 칠을 보수하던 도장 반장님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저 사람들 때문에 일이 안되나, 제 때 일을 못마쳐서 욕 먹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어차피 다 제 책임일텐데.... 자 이제 각자 신경쓰지말고 일이나 제대로 합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작업을 정해진 시간에 다 마쳤고, 나의 건방지고 불순한(?) 행동은 그 자리에 있었던 이사인지 본부장인지 하는 책임자가 되려 좋게 봐줘서 한동안 그 회사의 매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되는 일이라고는 없던 20회 국회를 보다못해 우리 국민은 마침내 이전에 없었던 177석이라는 어마무시한 의석을 집권여당에 확보해줬다. 제대로 하라는 명령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내린 것이다. 미통당인지 미물당인지, 검찰이든 떡검이든 기레기가 아니라 기더기가 난장을 피고 훼방을 놓으며 꾸물거리더라도 시간은 정해져있다. 대선까지 1년 반, 다음 충선까지는 4년이라는 기간동안의 의정활동은 잘하건 못하건 전적으로 여당의 몫이고 책임이다.
핑계도 소용없고 변명도 필요없다. 밀어만 주면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다짐 잊지 말라. 당신들이 기댈 데는 국민밖에 없고 국민은 엄정하고 현명하다. 협치고 나발이고, 관행이고 지랄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상식적이고 무도하며 불법을 자행하던 국회였고 국회의원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