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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y 31. 2020

똥을 싸다가...

두고두고 잘했다고 여길 만한 일이 얼마나 될까요?

그보다는 실수였고 후회스러운 일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00년을 산다면 절반을 훨씬 넘겼습니다. 머리가 스펀지같고 가슴이 말랑했던 시절은 한참 지난 나이입니다.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사는 집을 손봐줬습니다. 하는 일이 그런 일인데 드는 손에 뭐라도 해줬어야 했는데 화장실 등 하나 갈아주지 않던 무심한 남편이었지요.

제가 이사들기 전 세 살던 가족은 오랫동안 병석에서 계시던 어르신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30년 전 아파트 건축 당시 그대로였던데다 한번도 주인이 살지않고 세를 줬던 집인데 처음 이 집을 방문하고서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안방은 링겔을 꽂고 계신 어르신의 병상이 차지하고 있었고 성한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고색창연한 아파트였지요. 이번에는 제대로 손 봐주겠다면서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인근 아파트의 어느 동보다도 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입주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제가 사는동안에는 변함없을 것이 하나 있습니다.
화장실 휴지걸이와 욕실 선반입니다. 요즘은 찾아 볼 수 없는 도기로 된 제품입니다. 여간해선 작업자에게 화를 내지 않는 제가 십수년동안 호흡을 맞췄던 타일 반장님께 역정을 냈던 발단이 된 물건이기도 합니다. 안방과 거실 화장실에 모두 있었는데 잠깐 한눈 파는새 그가 거실쪽 휴지걸이를 부수고 말았습니다. 분명 그대로 쓸거라고 일러뒀건만 이전에는 그런 적이 없어서였는지 무심결에 철거하려 든 겁니다. 떼어 낸 휴지걸이를 아무리 만지작거려본들 귀퉁이가 깨진 이 물건을 다시 붙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거실 화장실에만 최신 스텐 휴지걸이가 붙게 됐습니다.

원래 있던 도기 휴지걸이와 욕실 선반을 살린 건  두고두고 잘한 일 중 하나입니다.
변기에 앉아 이 도기로 된 휴지걸이를 볼 때마다 마음에 세기곤합니다.
'저런 어른이 되야 할텐데... '
견고하고 얼룩이 쉬이 묻지않으며 싫증나지 않는 저 물건처럼 나이들어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과시하지도 다른 것들을 압도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늘 새로운 휴지로 바뀌지만 한결같이 보듬고 감싸줍니다. 이 물건으로 인해 화장지에서 향기가 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는 뛰어난 리더가 되라는 말을 귓등으로 듣습니다. 그런 책이, 선생이 있다면 그리 탐탁해하지 않습니다.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대장만 하려든다면 남아있는 사람이 드물텐데 누구를 이끌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성현들과 뛰어난 인물은 아주 희소하고 말이 많았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고 함께 함으로써 일깨웠습니다.
그러니 작정하고 대장이 되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신뢰가 생기지 않습니다.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 리더를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현혹되지 마십시요. 정작 그는 제대로 된 리더도, 우러러볼만한 부자도 아닐겁니다. 그저그렇고 그런 세련된 약장사에 불과하거나 과시하는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저희 세대는 뛰어난 사람,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행복한 삶을 찾으라는 말은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만큼 살고보니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스스로 행복을 찾는 삶이야 말로 어려운 일임을 깨닫고 삽니다. 훌륭한 지도자보다 깨어있는 시민이 위대하고 힘있는 사람입니다.

군림하기보다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세상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려 기를 쓰다보면 생채기가 나고 누군가를 밟아야하기 마련입니다.
자녀들에게 사람들이 스스로 길을 터주고 자신이 오르려하지 않아도 받듦을 받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편이 낫습니다. 우격다짐과 머리로 윗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그 자리에 올라 자신의 상채기를 무엇으로 보상받으려했는지 지켜보지 않았습니까. 낮은 자세와 가슴으로 사람들이 등을 떠밀어 앞장세운 우리중 누군가가 얼마나 잘해내는지 세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른이 되고 늘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라 말하는 어른이 돼야겠습니다.  너만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라고 당부하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남이 말해줄 수 없고 부모라고해서 찾아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여야겠습니다.
저희 스스로 그런 어른이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되는 법을 30년은 족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휴지걸이에게서 배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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