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지 않게 아니 늦었다 싶었더라도 그랬지 않았을까 싶은데 쉬흔이 다되어서야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즈음 지적인 허기를(허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느낀 건 행운이었다. 이전에도 장서는 꽤 많았지만 내게 책은 대부분 '보는' 것이었다. 하는 일이 그러하니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터라 국내외 디자인 서적을 사모아서 봤다. 말하자면 어린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는 것과 흡사했다. 보는 것과 읽는 것은 별개다. 그림과 활자의 뿌리는 같더라도 뻗은 가지는 멀고도 멀었다. 나의 '책읽기'는 지금도 진행형이고 배인 습관이 아니다.
주변에 책을 읽는 사람이 꽤 많다. 지금까지 3만권을 읽었다는 대학 동기도 있고, 이제는 통달하여 그만 읽어야겠다는 선배도 계신다. 나로서는 감히 넘보지 못할 그런 사람들 틈에서 부러워만 하거나 굴하지 않고 꿋꿋할 수 있었던 건 '책읽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름의 주관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느날 내 생각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글을 만났다. 누구보다 책읽기에 엄격하고 당신의 그것을 불신하기까지 하는 김훈 선생이 말했다.
" 자꾸만 사람들이 책을 읽으라, 책을 읽으라 하잖아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닌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근사록>이라는 책을 보면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 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니 다독이냐 정독이냐, 일 년에 몇 권을 읽느냐, 이런 것은 별 의미 없는 것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도 그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나 자신을 어떻게 개조시키느냐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죠. 책에 의해서 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개조될 수 없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 없는 거죠.
책은, 우리가 모든 세상과 직접 관계해서 터득하고 경험의 결과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 보조적인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에요. 세상을 아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인 것이지요.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그러는데, 내가 보니까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길은 세상에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책을 읽더라도, 책 속에 있다는 그 길을 세상의 길과 연결을 시켜서, 책 속의 길을 세상의 길로 뻗어 나오게끔 하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무의미한 거라고 생각해요." - '소설가 김훈의 서재'의 인터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