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내 어줍잖은 글을 두고 칭찬하는 분께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 이를 '겸손'이라고 한다. 실은 그럴 때마다 어디론가 숨고 싶을만큼 부끄럽다. 사실이 그러하고 이미 스스로 익히 알고 있는 바를 토로하는데 '겸손'은 해당이 안되는 말이다.
내 '글쓰기'는 타고난 성정이 다소 무모한데다 얼굴이 두터워서 가능했을 뿐이다. 마음이 움직여 하는 일이면 먼저 달려들고 남이 뭐라건 상관하지 않다보니 스스럼이 없었다.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부터 심장이 두근대고 손가락이 꿈틀거려 긁적거렸다. 나중에는 글을 쓰기위해 책을 읽는 것인지, 책을 읽다보니 글을 쓰고 싶어진 것인지 헷갈렸지만 무에 대수일까 싶다.
보고, 겪고, 읽다가 생각하던 것이 마음 한 구석에서 첼로를 켜면 그냥 쓴다. 그 뿐이다.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글쓰기' 관련 책을 수 권 읽기도 했지만 단 한 줄도 건지지 못했다. 흉내라도 내볼까하면 중간에 막혀 나가지 않고, 끝맺어 본 적도 없다.
책을 읽어 치부할 수 있었고. 성공의 길라잡이가 됐다는 얘기를 들으면 부럽다. 탁월한 글을 후대에 남기고 세상을 비추는 작가를 만나면 경외감에 두 손이 모일 지경이다. 그런 작가나 글을 대할 때마다 매번 쪼그라드는 나를 발견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내가 좋아서 할 바에야...
그런 작가 중에 '올리버 색스'가 있다. 국내에 들어온 그의 책은 다 읽지는 못했어도 소장하고 있다. "글을 많이 쓰셨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웃음). 일기 천 권, 임상진료기록 천 권을 쓰셨다고 하는데, 지인들과 주고받으신 편지도 책으로 엮으면 천 권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올리리버 색스의 자서전 번역자 인터뷰 중에 한 구절이다. 그녀는 올리버 색스의 환자가 되어 진단을 받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나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박지원의 '연암일기'는 옮긴 출판사 별로 두 질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올리버 색스'나 '박지원'의 글을 읽으면 화가 난다. 박지원이 광활한 요동 땅을 보고 통곡하기 좋은 곳이라하니 동행이 의아해하며 연유를 물었다. "사람들이 단지 인간의 칠정 중에서 오로지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면.... 분노가 극에 치밀면...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사랑이 극에 달하면... 미움이 극에 달하면...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만 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네. 통곡 소리는 천지간에 우레와 같아 지극한 감정에서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온 소리는 사리에 절실할 것이니 웃음소리와 뭐가 다르겠는가" -연암일기 中에서
감히 나는 연암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내가 그들의 글을 대하면 화가 나는 연유와 같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빼어난 글은 요동 벌판이고, 나의 '화'는 칠정 모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런 글로 인해 화를 낼 것이며 기꺼이 그들의 시종이 되어 요동을 밟을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