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by 문성훈

상대방과 의사소통하는데 언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몇 %일까?
놀랍게도 7%정도 밖에 안된다.
나머지는 비언어적 수단인데 목소리(음색, 억양, 크기와 빠르기 등 38%), 행동(표정, 태도, 몸짓 등 55%)로 무려 93%를 차지한다.
트럼프가 굳이 세계 정상들 가운데에서 포즈를 취하려하고, 악수하면서 힘을 주는 이유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추모사보다 조용히 유족에게 다가가 안아주던 문재인의 포옹이 던지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고 진실되게 와닿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직업적으로 상담과 협상 그리고 계약을 많이 하게 되는데 예전에는 내 귀나 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하는 걱정을 했었다. 만남을 가진 후에 머릿속에 대화 내용이 남아 있지 않아서다. 다만 '다시 봐야겠다' '못믿을 사람이군' '진행해도 되겠어'라는 근거없는 판단만 확신으로 굳어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취한 조치는 대부분의 미팅을 직원과 동행하는 것이었다. "ㅇ과장은 빠짐없이 대화내용을 기록해. 쓰든 녹음하든.."
자료 작성을 위한 것이었지 내 판단은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X맨이라는 영화 시리즈가 있다. 아다시피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인간이 주인공이다.
돌연변이는 아니지만 배우고 익히지 않았는데도 내가 다른 사람과는 다른 혹은 조금 나은 능력이 있다면 직관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횡령과 사기, 고의부도가 횡행하던 업계에서 지금까지 이만큼 버텨온 것도 그 덕이 크지 싶다.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상대의 말 정확히는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다. 눈빛이 흐려 보이는 지, 눈동자가 흔들리거나 제스처가 부자연스럽지는 않은 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상대의 목소리는 악기연주처럼 들린다. 그 악기는 타악기이거나 금관악기다. 마림바나 호른, 실로폰이나 트럼펫이다. 드물게 첼로 선율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영락없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데 빨리 대화를 끝맺어야 한다는 신호다.
아무튼 그렇게 비언어적 영역에서 어떤 느낌을 감지하는데 빠른 편이고 정확하다. 그 느낌은 '벗은 그대로의 모습인지, 입은 걸 보고 있는건지' '진심인지, 그리 보이고 싶은 건지' '상대를 배려하는 말인지.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하는 말인지'하는 따위다.
사랑을 하게되면 한 사람의 인생이 안기는 것과 같다고 했다. 진실된 소통은 어쩌면 나를 던지는 일이다. 대화도 그와 다를 바 없다.

긴 말이 어려운 SNS 대화에서 이모티콘과 이모지의 도움없이 농이라도 했다가는 오래 받기 십상이다.
한 학기가 저무는데 노트북을 상대로 떠들고 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렇질 못하다. 학생들은 가끔씩 옴싹거리는 증명사진으로 모눈종이처럼 박혀있다. '그렇구나' 인지 '그런가?'인지 아리송하다.

모두가 비대면의 세계가 가져다 준 모습이다. TV나 노트북 그 네모난 상자에 들어있는 인물들이라고 다를 바 없다. 다르다면 무대에 올라 온 배우의 도드라진 분장처럼 짙은 표정과 과장된 제스처를 보인다는 정도다. 그래도 글로서만 혹은 음성으로만 대하는 것보다는 낫다. 어차피 그들 대부분을 직접 대면하기란 그것도 단 둘이 만날 기회는 거의 전무하다.

아침. 늘 그랬듯 머리을 깎으러 동네 목욕탕에 들렀다. 뉴스가 켜져 있다. 개원 협상 중인 야당의 부대변이 초대됐다. 반듯한 용모에 걸맞게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답하지만 으레 그래왔듯 내 귀에는 그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그의 목소리에서 분명하게 느껴지고 들리는 게 있다.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개 짖는 소리로도 싸우려 드는 것이지 아니면 다가오지 말라는 의미인지 구별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는 후자에 속한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트럼프가 소요사태와 관련해서 연이어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물론 그가 최애하는 트위터를 통해서다. 나는 그가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지하벙커로 피신할 때 어떤 자세로 가령 낮은 포복이었는지 어깨를 핀 당당한 걸음걸이였는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화면에 나온 성경책을 든 그의 표정과 자세에서 육중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늙고 초라한 노인네가 보인다.

어쨌든 남의 나라 대통령이지만 말할 때마다 쉼없이 튀어나오는 오리 주둥이와 허공을 찔러대고 쑤시는 그 손가락이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93%가 아웃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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