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명찰

by 문성훈

행복한 삶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가 '관계'입니다. 굳이 최근의 연구결과와 책을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납득이 됩니다.
쉽고 작은 것인데 누구에게는 어렵고 크게 다가오는 것이 인간 관계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소확행은 소소한 관계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늘 드시던 걸로 드릴까요?"
"네"
여러분도 일상의 루틴이 있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사후에는 늘 산책을 한다든지, 하루에 글 한 편은 남기는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예외적인 날이 아니면 항상 같은 코스로 출근합니다. 오늘은 멀찌감치서 그녀가 창밖으로 나를 알아봤습니다. 인사를 합니다. 어차피 들릴테지만 이런 날은 더구나 지나칠 수 없습니다.
어느덧 출근길에 '블랙슈가 카페라떼'를 사서 들고오는 게 루틴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쿠폰 7잔이 쌓이면 한잔이 공짜입니다. 그렇게 몇 번을 털다가 지금은 그냥 적립해둡니다.

얼마전에 새롭게 인테리어 단장을 하던데 아무리 명멸이 반복되는 홍대라지만 한동안 그대로 있을것같기도 합니다. 그 공사로 며칠동안 문을 열지 않다가 열었던 날입니다. 가격이 올랐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데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쩌죠. 본사 방침이 바뀌어서 '블랙 슈가라떼'에 '샷 추가'를 해야지 카페라테가 되는데... 그렇게 해드릴까요?"
- 그래요. 근데 왜 그랬지? 많이 찾지 않나봐요?
"저의 매장은 그런대 다른데선 많이 안찾나봐요. 건의는 했는데..."
- 참 고이헌 일일세. 소비자 불만 접수라도 해야할까보네
"그렇게 해주세요. 저도 죄송스러워요"
웃으면서 맞장구를 칩니다. 이내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미소가 이쁩니다. 아마 제 딸아이 또래일 겁니다.

디저트를 서비스로 줍니다. 저는 늘 아이스크림을 선택합니다. 컵 뚜껑의 옴폭 파인 데 담아주는데 언젠가 한번은
"제가 높이 쌓았어요. 녹기전에 빨리 드셔야해요"라며 건넸습니다.
단골의 혜택입니다. 이전에도 다른 직원의 것보다는 또아리를 한번 더 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이 친구에게 주문을 했었습니다.

오늘은 건네받은 컵에 아이스크림 스푼이 안보입니다.
"어. 스푼 빠트린 것 같은데..."
"홀더에 꽂혀있어요"
"아. 여깄구나. 왜 투명으로 바뀌었지. 분홍색이더니..."
"그러게요. 바뀌었어요. 가끔 착각들 하세요"
또 웃습니다. 저도 따라 웃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명랑한 웃음이 기분좋게 합니다. 건강한 젊음입니다.

근방에 수많은 가게가 있습니다. 그 수에 몇 배가 되는 사람들이 일을 합니다. 대부분 젊은이들입니다. 홍대는 젊습니다. 저는 꼰대아저씨거나 아빠또래의 어른입니다.
젊음의 거리에 쏟아져나오는 젊은이들을 위해 젊은이들이 일을 합니다.
제 사무실 건너편 미용실에서는 늦은밤이면 일과에 지쳤을 어린 스텝이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며 마네킹에 씌운 가발과 씨름합니다.

저는 그들의 이름도 나이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행복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만 관계가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한번도 그 커피숍 직원의 명찰을 유심히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늘 '점장님'으로 부릅니다. 아ㄹ바이트생이 그녀를 그렇게 부르더군요.
그게 뭔 대수겠습니까. 관계는 계기, 직업, 장소, 나이나 이름과는 무관해보입니다. 어쩌면 좋은 인간관계란 친소나 만남의 횟수와도 상관 없어 보입니다.

저는 그들로 인해 생활의 활력을 얻고 배우며 행복해합니다. 소소하다고 작은 행복이란 의미는 아닐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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