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여행 후기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1999)
쿠바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올드카에 몸을 싣고 아바나 시내를 달려보지도, 카사 그란다 호텔에서 아름다운 산티아고 시가지를 내려다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쿠바 여행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늘 죽기 전에 한번은 다녀와야겠다면서도 가보지 못한 나라입니다.
저는 아직도 악보를 보면 콩나물이 둥둥 떠다니는 착각에 울렁증이 생깁니다. 음악에는 소질도 없는데다 다룰 수 있는 악기도 없습니다. 노래도 못부릅니다. 인정하고 싶지않지만 남들은 음치라더군요. 태어나서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보지 못한 게 노래와 음악입니다.
사람이 원래 그렇습니다. 자신이 못하는 것, 해보고는 싶지만 안되는 것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마련입니다. 음악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있습니다. 음반을 누구보다 열심히 사모으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음악듣는 걸 좋아합니다. 누구는 그 이유가 영혼에 음악이 깃들어 있어서라고도 하고 영혼이 원래 음악을 좋아한다고도 하더군요.
다큐멘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2 아디오스>를 연이어 봤습니다. 그렇게 쿠바를 다녀왔습니다. 누구는 그렇게 물을 수 있을 겁니다. 80~90세에 이른 뮤지션들의 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감히 쿠바를 가봤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행이란게 본래 그렇습니다. 몇날 며칠을 머물렀는지 또는 무엇을 봤느냐로 그 나라를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름난 관광지를 몰려다니며 둘러봤다고해서 그 나라를 알게 됐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의 음악과 얘기를 통해 쿠바라는 나라를 더 친숙하게 느끼고 더 그리워하게 됐습니다. 왠지 서방세계와는 달리 단절된 나라로 인식되는 쿠바를 다녀온 것만 같은 착각,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 그리고 왜 헤밍웨이가 아바나와 쿠바사람들에게 반했는지,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왜 그곳 작은 어촌이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도 즐겨하던 다이키리(Daiquiri, 럼주에 라임주스, 설탕, 얼음을 섞은 칵테일)나 모히토보다는 쿠바의 손음악에 취해 있었는 지도 모릅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공연이 예상못한 큰 성공을 거둔 후 꼼바이 세쿤도가 한 말은 인상적입니다.
"이런 큰 성공은 난생 처음이에요. 글쎄요 이러다 미치는 거 아닐까요? 아니라면 꿈일까요? 난 93살이나 먹었어요. 물론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인생에는 반드시 꽃이 피기 마련이에요. 그 꽃은 평생 한번밖에 피지 않죠. 그래서 언제 꽃이 필지 잘 지켜봐야 해요"
저도 언제 제 꽃이 필 지 지켜볼 참입니다.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겠는데 그가 비결도 일러줍니다.
"장수의 비결? 도를 넘지 말라는 것. 무엇이든 도를 넘으면 안돼요" 그는 닭고기를 먹더라도 아주 적게 먹어 질리지 않아야 내일 다시 먹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두번째 비결인 사랑도 그와 같이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인종차별로 코러스만 해야했던 과거를 딛고 인생의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마음껏 노래 부를 수 있었던 이브라힘은 두 곡을 부르면 산소호흡기를 써야하는 상황에서도 무대를 섭니다. 그리고 나흘 후 세상을 떠납니다.
말년에 치매를 앓으면서도 건반앞에서는 악보를 기억해내던 루벤 곤살레스는 자신의 무덤에서도 연주할 거라고 말을 하죠.
그들의 예술혼과 식지않는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쿠바의 국민시인 호세 마르티가 사람에게는 세가지 의무가 있다고 했답니다.
첫째. 나무를 심을 것. 둘째. 아이를 낳을 것. 세번째 책을 쓸 것입니다. 최소한의 의무는 다한듯 싶은데 보다 심오한 뜻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헛되이 보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아흔을 바라보는 유일한 여성 보컬 오마라 포루토온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죠."
아직 많은 날이 남은 우리는 아침 햇살이 우리를 깨우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겠습니다.
여러모로 이번 쿠바여행은 유익했습니다. 아직 다녀오지 않은 분께도 권합니다. 15일간의 격리기간도 면제입니다.
"행복을 위해서 얼마나 적은 것이 필요한가! 백파이프의 소리.... 음악없는 삶은 오류이리라" - 니체 전집21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