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의 망상

by 문성훈

본디 없는 글재주인데다 배운 바도 없지만 글쓰기를 좋아한다.
어디선가 책을 읽어서 글을 쓰게되는게 아니라 글을 쓰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독서량이 부족한데도 무작정 써대다보니 내 글은 밤에 썼다 아침에 읽는 연애편지처럼 낯부끄러울 때가 많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탁월함을 보이는 사람을 우러러보게 마련이다. 잘하고 싶으면 싶을수록...

요즘은 서식지와 출몰이란 말을 무시로 쓰던데 나로서는 마뜩잖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살고 있는 주거지에서 가까운 행동반경 그리고 특정인에 대한 등장을 일컫는 것 아닌가싶다.
막내동생은 인기 연예인의 주 서식지인 강남 어디께 살고있고 나는 비교적 젊은 연예인 출몰이 잦은 홍대에 사무실이 있다. 가끔 동생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연예인 누구 얘기를 꺼내는데 나는 마주쳤던 연예인에게도 무심하다. 어쩌다 보게되는 그들에게 여중생처럼 괴성을 지를 나이도 아니거니와 사진이라도 찍자고 할 만큼 관심대상이 아니라서다.

그런 내가 괴성도 못지르고 사진도 못찍었지만 내심 흡족해하는 마주침이 두번 있었다.
내가 살고있는 지역에는 문인이 많이 살고있다. 그 사실만으로 왠지 내 격이 올라간듯한 기분이 들때도 있으니 아무래도 내가 그들을 흠모하고 존경해서일 것이다.

걸어서 가는 거리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에 지인과 맥주잔을 기울이는데 뒷자리에 앉는 손님이 있어 무심코 봤는데 황석영작가였다. 마침 주인이 안주를 내오던 참이라 물었다.
"황석영선생이 자주 오시나보죠"
"네. 자주 오시는 편이죠. 댁이 근처시라... 좋아하는 작가...? "
"그럼요. "
"네. 그럼 잠깐만..."
주인이 카운터로 가더니 책 두권을 가져왔다.
"제가 몇권 구입했습니다. 가서 직접 싸인이라도..."
"아니 저 괜찮..."
주인은 내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리로 가더니 황석영선생에게 우리를 소개했다. 엉거주춤하니 있을 수는 없어 인사를 드리고 싸인까지 받게 됐다.
"아이고 이거 감사합니다. 성함이...." 황석영선생은 내 이름을 묻고는 사람좋은 웃음으로 싸인을 해서 책을 건네줬다. 그렇게 뜬금없이 돈 안들이고 저자 싸인본 책 한권을 가지게 됐다. 술 맛이 달았다.

또 한번은 남도가 고향이라 주인의 안주솜씨가 좋은 인근 단골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을 때다. 호형호제하는 동생과 이미 두 세 주전자째 비운 뒤라 불콰해지던 참이었다.
내가 출입구를 바라보고 앉았는데 젊은 사람 셋에 한 중늙은이가 미서기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이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 아무말도 않고 일어서서 그 중늙은이 앞으로 가서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인사를 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 중늙은이는 김훈작가였다.
"아...네 반갑습니다" 뜬금없이 인사를 받은 김훈선생은 악수를 청했고 나는 두 손으로 공손히 갑읍해서 받았다.
조밀하게 붙어앉는 좁은 가게라 바로 뒷자리 그 분 일행의 얘깃소리가 간간히 들렸는데 한참 후배작가거나 출판관계자와의 대화같았다.
나는 자리가 파하고 계산을 하면서 주인에게 속삭였다.
"저 테이블 계산도 같이 해줘요"
존경하던 어른 술 한잔 받아드리는 영광이 또 있을까.
"아이고 큰일납니다. 저번에 한번 그랬다가 얼마나 선생님한테 혼이 났는지... 이거 받으면 난리납니다"
주인은 내 신용카드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깝게도 그 기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술집을 나오며 문 앞에서 인사를 드리고 나왔고 김훈선생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묵례로 답하셨다.
지금도 그 동생과 술자리를 하면 그때 일을 두고 나를 놀린다,
"천하에 무서울게 없는 형이 처음 본 자리에서...얼마나 정중하던지...와!.... 놀랬습니다. 그것도 완전 90도로 인사를.... 푸하하 제가 형을 달리 봤다니까요"

나는 공식, 비공식으로 유명인을 꽤 만난 편이다. 국회의원, 연예인, 그룹 회장...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그렇게 정중하게 조아린 기억이 없다.
김훈선생은 과거 기자시절 황석영작가 담당으로 곤욕을 치른 바가 있다고 했다. 전국 각지로 돌아다니는 자유분방한 작가의 연재 원고를 마감까지 받아야하니 분통 터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아직도 두 분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김훈선생이 "그때 잡아서 죽여버리는 건데"라는 농담까지 던질 정도라고 하니 구원은 있으되 친분은 돈독한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김훈, 황석영 두 분과 나 세 사람을 억지로 엮어 친분이 있다고 여기며 산다. 다 좋은 동네에 사는 덕이다.
그나저나 쿠바로 가서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바 그 자리에서 다이키리 한잔을 들이켜야 헤밍웨이선생까지 어떻게 엮어볼텐데 기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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