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척에 따라 작성된 도면상의 치수를 재는 일종의 자인데 1/100, 1/200, 1/500등 얼마나 축소해서 그려놓았는지에 따라 같은 잣대의 칫수 면을 갖다대어 그 실제 칫수를 가늠하는 도구입니다. 학생시절부터 건축이나 디자인을 배우면서 제일 처음 배우고 늘상 쓰게 됩니다. 그런데, 한 도면에 그려진 그림을 각각 다른 스케일 면을 가져다대서 칫수를 읽으면 어찌되겠습니까? 현장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거니와 절대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공방이 치열한 정치문제나 아이들 싸움에 팔걷어 부치고 나선 부모처럼 편파적인 언론 보도를 접할 때는 자칫 정신줄 놓으면 판단도 흐려지고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우익이든 좌익이든 상대편이든 내 편이든, 정치적 사안이든, 도덕적 사안이든 그 잣대는 같아야합니다. 설사 스케일자를 지녔더라도 같은 도면, 즉 같은 사안에서는 같은 스케일 면으로 재야지 정확한 칫수. 엄정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기준이라 부르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고 합니다.
상대에겐 엄격하게 자신에겐 관대하게 잣대를 가져가서도 안됩니다만 심지어 뒤바꿔서도 안됩니다. 함께 사는 세상입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침묵하고 있는 대중을 무서워 할 줄 알아야합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라면 늘 엄정하고 공정한 잣대로 평가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지난 날. 오랫동안 여당의 지위를 누렸던 보수정권이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야당이 된 지금도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은 늘 상대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대거나 그들 내부에서조차 사안이나 사람마다 다른 잣대를 갖다 대었기 때문입니다.
기준은 늘 하나입니다. 이미 언론이라는 사회적 스케일은 망가진지 오래됐습니다. 검찰이나 사법부 역시 안팎에 스케일을 달리 가져다대는 통에 신망을 잃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스케일이 아주 없어진 게 아닙니다. 현명한 시민이라면 늘 품안에 정확한 스케일을 가지고 다닙니다. 시민의 눈을 의식하고 심판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고해서 내 이익에 반한다고해서 다른 잣대를 대는 것은 한 도면에 다른 스케일 면을 가져다 눈금을 읽는 것과 진배 없습니다. 전체 도면을 읽을 수도 완성할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도, 학생들도 아는 상식을 쉽게 잊어버리는 세태가 안타까운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