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건너며...

by 문성훈

예순으로 가는 쉬흔 깔딱고개에서 나는 아직 살아있음을 그리고 젊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산다. 그래야 자극적이진 않더라도 좀 사는 맛이 나고 근육은 빠지더라도 어깨가 움츠려들지는 않으니까.

그런들 지나온 삶의 궤적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서 가끔은 부끄러울 때가 있다.
돌아보면 좀더 선굵게 행동해도 됐었고 용기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는데 얄팍하고 비겁했던 적이 많았다.
지금껏 거쳐 온 시험이나 도전이 그러했다. 될 만한 시험이고 합격 가능성이 높은 시험에 응시했고, 남이 엄두를 못내거나 내가 잘 할 수 있는 만한 것에만 도전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곤 한다.

80년대 후반 군 입대를 앞두고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한달치 학원비를 타냈다.
휴학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으니 친구들과 술자리도 잦았고 당구장도 가야했다. 어찌하다보니 학원비는 거의 탕진하고 몇 푼 남지 않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시간으로 운전연습을 받을 수 있었다. 딱 두시간 탈 수 있는 금액이었다. 30분씩 4번 탔다. 자신감은 붙었지만 그래도 미심쩍어 정육점을 하는 친구 형님의 포터를 겁없이 몰고다니다 논두렁에 처박았다. 다행히 별 손상이 없어 무사히 넘어갔다. 그리고 시험을 치렀다.
운좋게 단번에 필기와 실기시험에 붙었다. 한동안 예닐곱번 실기에서 떨어진 친구들을 놀리느라 이 사실을 으시대며 떠벌리고 다녔다. 문제집 한 권, 몇 시간의 실습이면 족했던 운전면허 시험을 두고 그랬다. 그것도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인데....

쉬흔이 되던 해던가 그 다음해였던 것 같다.
공원을 거닐다 젊은이들이 타고다니는 희안한 물건을 보게됐다. 바퀴 하나로 타는 전동휠이었다. 위험해보이기도 한데 재미도 있어보여서 매장을 찾았다. 주인이 내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나이를 물었다. 내 나이를 듣더니 자녀가 아닌 본인이 타려고 찾아온 손님 중에 나이가 가장 많다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일단 내 연배에 아무도 도전을 안했으니 안돼도 본전이고 잘되면 성공이었다. 부상이 염려스럽긴 하지만 그 위험때문에 남들이 도전을 하지않았을테니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그때가 추석 연휴를 앞둔 즈음인데 덕분에 연휴 내내 공원에서 아침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 자빠지고 꼬꾸라지며 연습을 했다. 밤새 끙끙 앓으니 아내가 걱정하며 만류했다. 그런들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란걸 알고 있으면서.

이러다간 엉치뼈고 정강이고 남아나지 않겠다싶어 뭔가 보호장구를 해야겠는데 당장 생각나는게 생리대와 지저귀였다. 생리대를 몇 겹으로 해서 바짓 속 무릎에 대고 엉덩이에는 기저귀시 바지 속에다 몇겹 대고 탔다. 비록 나를 모르겠지만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렇게 허세를 부렸다.
지금은 아마도 내 나이 또래 중에 잘 타는 축에 들거다. 일단 시도한 사람이 희소할테니까. 광주 송정역에서 담양까지 그 외발 전동휠을 타고 갈만큼 무모했었다. 아무튼 그 희안한 탈것에 도전한 건 호기심도 있었지만 남이 잘 엄두를 안내서였다.

누구나 알아주는 대단한 인물도 아니고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런 삶의 태도나 자세도 어느정도 필요하다.
내가 감당할 만한 무게를 들어올리고 남들은 시큰둥해도 내가 관심을 갖는 소소한 성과에 자족하는 삶. 그래서 별것 아니지만 자신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할 수만 있다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거대한 담론에만 매몰되고 버거운 목표에 숨이 차서 헐떡거리다보면 어느새 지치고 주름진 자신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가을이 짙어지는 계절. 만만하고 그다지 죽을 힘을 다하지 않아도 되는 소일거리를 찾아 자칫 우울에 빠지려는 나를 건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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