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배우려 하지않고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감각으로 느껴지고 몸이 먼저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늘 무심코 지나는 거리의 풍경에서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알게되고,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렇다.
혼자 중얼거렸건 자랑스레 떠벌렸던 말이었건 내 예언이 맞아서 우울한 날이 있다. 사무실 건물이 있는 이면도로의 가게 두 군데가 문을 닫았다. 조금 떨어진 곳까지 세군데다. 며칠 상간에 벌어진 일이다. 고작 사계절 한번 났을 뿐이데 쥬스와 슬러시를 팔던 이웃한 건물 1층 테이크아웃 전문 가게의 집기가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작년 여름에는 내가 자주 망고나 오렌지 슬러시를 사먹곤 하던 가게다. 중년의 남자주인이 혼자 하던 가게다. 낯이 익으면 가벼운 농담정도는 건네는게 내 성격인데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찬 음료뿐인데 가을, 겨울을 나기가 쉽지 않아보여서였다. 작년에 이어 용케도 올해를 넘기나했다. 올 여름 다른 커피점에서 아이스 커피라도 사들고 오는 날이면 그 가게앞을 지나기가 왠지 미안해서 다른 길로 돌아서 다녔다. 그런데 오늘 집기를 들어내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안좋았다.
맞은 편에 있던 제법 넓은 식당은 이미 짐을 뺀지 일주일 정도 됐다. 벌써 다른 가게가 들어오려는지 페인트칠을 하느라 분주하다. 공영주차장 건너편 떡볶이가게는 불이 꺼져있다. 휴점이라는 안내문이 한달 가까이 붙어있다. 휴점이 페업으로 읽힌다.
세 곳 모두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고 예상하던 가게다. 식당은 이름이 김피라였다. 김밥과 피자 그리고 라면이 주메뉴였다. 개점하자 한 두번 들리고는 가지 않던 가게다. 메뉴 앞글자만 딴 다소 무성의한 작명처럼 음식들도 인상에 남지 않았다. 이미 오를대로 오른 임대료와 인건비도 버거울텐데 최근에는 지나는 행인도 부쩍 줄어들었으니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건너편 떡볶이가게는 제법 의욕있는 출발을 했던 가게다. 젊은 사람들을 겨냥해서 나름 신경을 쓰고 마켓팅에도 열을 올렸다. '여심당'. 그녀의 떡볶이란 서브네임에 걸맞게 비록 조화지만 입구를 화려한 꽃들로 장식했고. 테이블과 의자를 포함한 인테리어를 스파케티나 피자가게처럼 꾸며놨었다. SNS에 가게를 선전해주면 서비스음료를 제공한다는 배너도 내걸었다. 오픈하자마자 이 가게 앞을 지나면서 같이 걷던 일행에게 "뭔가 안맞는 그림같지 않나요. 메뉴와 가게 분위기도 그렇지만 행인과 눈이 마주치는 창가 테이블에서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 젊은 사람들은 다르려나? 그런데 제 생각에는 오래 못갈 것 같군요"라고 했던 말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대통령은 경제가 나아지는 조짐이 보이고 최근에는 수출도 호조를 보인다는데 소시민들이 느끼는 경기는 갑작스럽게 내려간 기온을 따라가는 것만 같다. 나라가 망하지않은 다음에야 따박따박 월급받는 경제관료들은 나랏돈을 움켜쥐려고만 하는데, 영세업주와 중소기업 사장은 다가오는 월급날이 두렵기만 하다. 골목에 즐비한 가게는 문을 닫는데 배달업은 활황이란다. 배달업계와 택배회사는 좋아서 죽고 택배기사는 과로로 죽는다.
인간사도 과학인가보다. 강원도에서 군복무를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겨울이면 빼치카를 때는 내부반에서 생활했다. 물리시간에 배운 대류를 체험하기 좋은 환경이다. 점호받느라 서있다보면 빼치카로 데워진 윗 공기에 잠시 현기증을 느끼곤 했다. 침상바닥은 차갑게 얼어있는데 머리가 있는 윗 공기는 한증막이어서다. 지금 이 세상도 윗공기와 아랫공기는 천양지차다. 이전에 낙수효과를 부르짖던 정권과 그들에게 아첨하던 자들이 있었다. 아니다. 인간의 탐욕을 진정 몰라서 한 얘기가 아니다. 차라리 마당에 수영장을 파서 물로 채울지언정 한방울도 흘려보낼 리가 없다. 댐으로 가두고 보를 막아 마침내 물까지 썩게 만들었다.
와호장룡이란 영화가 있었다. 무림고수 주윤발과 장쯔이가 대나무숲에서 무공을 겨루는 씬이 인상적이었다. 요즘 우리나라가 요즘 그래 보인다. 그들은 폼나게 대나무 위를 날아다니며 무공을 뽐낼 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땅에 내려와 무기를 내려놓고 호미를 들지않는다. 그들의 무림계는 우리 인간계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다. 그래서 그들의 칼날이 민초를 겨누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로지 자신과 그 파벌을 위해 싸울 뿐이다. 누가 상대를 추풍낙엽처럼 떨어뜨리든지 지금 대나무숲 아래 민초들은 죽순도 나지않는 겨울채비가 을씬년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