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고3시절 국어선생님을 뵈었다. 대학을 들어가고서는 처음 마주친 셈이다. 고향 들를 일이 뜸해진 탓도 있지만 한 목욕탕에서 같은 시각에 마주칠 확률은 아무래도 희박하다.
"그래 학교는 잘 다니고 있냐?"
"네. 잘 다니고 있습니다"
"너 고3때 아버지께서 니가 끈금없이 국문과 얘길 꺼냈다고... 국문과는 어떻냐고 물어보시더라"
금시초문이다. 국어선생님은 아버지의 고교 후배신데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면서 호형호제하던 분이다. 국문과 얘기를 꺼낸 건 사실이다. 자연계인 내가 뜬금없이 국문과 진학에 대해 여쭤봤을 때 아버지의 태도는 단호하셨다.
"국문과? 잘 되면 신문기자고 아니면 가난한 소설가나 시인밖에 안된다"
서로 말이 길지않은 부자간이니 그로써 끝난 애기였고 나는 건축학과에 들어갔다. 원래부터 염두에 뒀었기에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심 미안하고 걱정스러우셨던 모양이다.
대학을 들어가고 처음 맞은 추석에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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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제가 어디로 갔으면 좋으시겠어요?"
수시 결과가 나온 후 대학 선택의 기로에서 아들이 물었다.
"음... 아빠 생각에는 원래 생각했던대로 가는 게 좋겠다"
"왜요?"
"물론 다른 학교가 서울이라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장점도 있고, 대학생활이 좀 더 자유롭겠지만 장래를 보거나 니 꿈을 펼치기에도 나을 것 같다"
여기까지만 말했어도 좋았었다. 그런데...
"이런 얘기 어떻게 들릴 지 모르지만 너도 이만큼 컸고 내 자식이니 말해도 되지않을까 싶은데.... 실상 한국이 학벌을 못떨치는 게 현실이지만 그것도 SKY정도나 해당하는데다 앞으로는 실력으로 평가받는 사회가 될거다. 그렇다면 지구의 70%가 바다이기도 하지만, 삼면이 바다인 한국으로서는 해양관련산업이 전망도 있고 도전해볼 만 할거다" SKY얘기는 안하는 게 옳았다.
"알았어요"
그렇게 결심을 하고서도 입학을 앞 둔 어느날 아들은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아빠 저 재수하면 안될까요? 재수하면 SKY 갈 수 있을것 같은데..." 역시 안해야될 얘기였다.(SKY)
"그럴수도 있지만, 대학 가려고 입시공부 1년 더 하는거 아빠는 별로다. 니 젊음이 아깝잖니. 그 열정으로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해봐. 아빠가 너희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공부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안했잖아.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해. 그게 맞는거야 대학이야말로 공부하는 데거든...며칠 시간이 있으니까 깊이 생각해서 그래도 재수 하고 싶거든 말해. 시켜 줄게"
아들은 한국해양대학을 다닌다. 이제 1학년이다. 결혼해서부터 지방인 처가 대신으로 우리 부부를 곁에 두고 살뜰히 챙겨주신 둘째 동서형님도, 그 분들의 아들로 그 녀석이 어릴 때부터 따랐던 사촌형도 같은 대학을 나왔고, 사촌형수도 동문이다. 그 영향이 커서인지 아들은 고2때부터 그 학교를 염두에 뒀었다. 그런데 막상 눈 앞에 닥치고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지금 나는 내가 아들 나이였을 때 선친의 심경으로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과연 내 판단이 맞는 것일까? 혹시 아들의 인생에 내가 끼어든 것은 아닐까? 지가 원하는대로 따라줬어야 하나?'
세상에 정답은 없다지만 미래만큼 불확실한 것이 또 있을까. 그마저도 내가 아닌 아들의 몫이다보니 여러 상념이 겹친다.
분명 선친도 그러하셨을텐데 이제는 여쭤보려해도 안계신다. 지나고 아쉬운 것 또한 한 두가지가 아니다.
조만간 부산으로 내려가 아들과 단 둘이 한잔하려고 한다. 선친과는 술자리 한번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