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살만해졌는데.... 이사도 했고...." 여인은 말을 끝맺지 못했고 병석의 사내는 그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다. 불과 두어달전만 해도 베니어합판 서너장쯤은 한번에 거뜬히 나르던 사내였다.
그는 손끝도 맵고 재서 작업지시를 하고 뒤돌아서면 어느새 끝마쳤기 일쑤였던 내가 만나 본 최고의 목수였다. 중학교는 마쳤을까. 가난에 떠밀려 가구공장에서 아교풀칠과 실못질로 일을 배웠다고 했다. 삐걱대는 소리가 안나게 하려면 바닥 구조목 못에 소금물을 부어 녹이 슬게 하면 된다는 교과서에는 없는 방법을 일러준 사람이기도 하다.
고집스럽고 까탈스런 디자이너인 나와 말수가 적고 솜씨 좋은 오야지인 그는 제법 죽이 잘 맞았다. 도면을 볼 줄 아는 몇 안되는 목수였던 그와 머리를 맞대면 풀리지 않는 일이 없었다. 한번은 아치형 터널이 뱀처럼 구불거리는 천장을 디자인했는데 다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충분히 해낼 것이라고 믿었고 그는 내가 도면을 수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내 설명을 듣자마자 망설임없이 작업을 시작했고 단기간에 끝마쳤다. 20여년전 이야기다.
그런 그가 초췌한 몰골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의 삼십대 서투른 패기와 사십대 화려한 기량을 지켜봤던 동료이자 조력자였던 사람이었다. 내가 그의 입원소식을 들었던 건 작업을 앞두고 연락이 닿지않아서였다. "박반장님 암이라네요. 뭐라더라... 무슨 희귀한 혈액암이라던데..." 그의 조수 입에서 나온 '암'이라는 말에도 덜컥했는데 '희귀' '혈액'은 무게를 얹고 어두운 덧칠을 했다. 내가 병실에서 무슨 말을 건넸는지 그리고 그의 대답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위로의 말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벼랑 끝 절망과 멍해진 슬픔 앞에서 건네는 어설픈 위로는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걸 안다.
그러고보면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20년 세월을 소위 노가다판에서 함께 뒹굴었는데, 지방을 돌며 꽤 많은 밤을 보냈으니 예외적이었다. 그가 전라도출신이란 것 외에는 정확한 지명을 알지 못하고, 집 주소도, 형제도, 주량도, 식성도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언제나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 출퇴근 시간은 자의 눈금처럼 지키지만 작업중에는 일초도 허튼 시간을 보내지 않는 프로페셔널, 아랫사람에게 시키기보다 몸소 보여줘서 따르게하는 상사, 누구의 평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잣대에 충실한 기술자, 요행을 바라지 않고 더도덜도 없이 자신이 한 만큼만 바랬던 정직한 소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목수였고 그의 팀과 일정이 맞지않으면 작업공정까지 미루게 했던 거의 유일했던 오야지였다.
그와는 갑과 을간에 흔히 있을 법한 술자리나 명절 선물이 오간 일도 없다. 그가 술 한잔 사겠다는 제의를 한 적도 없었거니와 내가 사는 술이나 밥을 달게 받는 경우도 없었다. 간혹 회식자리를 마련해도 가장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그였다. 다음날 작업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다. 그러니 다른 목수들은 못내 아쉬워하면서 자리를 뜨곤했다. 지방 공사를 다니면 숙소에서 으레 펼쳐지는 화투판에 끼지도 않았다. 언젠가 내가 물었었다. "술 좋아하시면서 언제 술 드세요?" "퇴근하고 집 앞 가게나 집에서 먹죠" "그 돈 다 벌어서 어디다 쓰세요" "몸 성할 때 벌어야지 언제 법니까. 내일 어찌 될 지 모르는데... 물려받은 것도 없고 늙어서 연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와 나를 지켜 본 다른 업체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불같고 얄짤없는 성미의 두 사람인데 흔한 말다툼 한번 하지않고 오랫동안 함께 일 하는 것이 자못 신기하다는 투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하는 얘기였다. 그와 나는 서로가 침범해서는 안되는 명확한 선을 그어놓고 지켰을 뿐이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서로를 위하고 존중하는 사이였다. 나는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양심을 신뢰했으며 자긍심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존경했다. 그 또한 누구보다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인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보다 열살정도 많았지만 유난히 깊게 패인 얼굴 주름이 더 나이들어 보이게 했다. 적은 말수만큼이나 잘 웃지를 않아서 처음 보는 사람은 그가 늘 화가 나 있는 줄 알기 십상이었다. 그 주름이 펴졌던 날을 기억한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할 때였다. 아마도 고된 노동을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그동안의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기쁨이 그를 웃게했다는 짐작을 했었다.
그 아들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병실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의 아내는 분양받은 새 아파트에 이사하고 남편이 너무 좋아했다고 했다. 고생한 보람도 없이 하필 바라고 기다리던 대로 되자마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울먹였다. 나는 그녀에게 내 연락처를 남기고 병실을 나섰다. 부고를 꼭 알려달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병원 복도가 터널만큼이나 어둡고 길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입원을 몰랐던 것처럼 부고를 받지못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녀가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아서 쓰렸다. "같이 일했던 회사 사장님 중에 찾아오신 분은 문사장님 밖에 없어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와 그의 죽음을 떠올린 건 한 재벌 총수의 부음을 접하고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입원이었고 석연찮게 길기만 했던 투병만큼이나 오랫동안 회자될 논란거리를 남긴 죽음이다. 수많은 사람이 애도하고, 오래전 기억속 길기만 했던 그 복도를 꽉 채우고도 남을 조화에 묻혀 세상을 떠났을테지만 나는 그 재벌총수의 죽음이 그리 애석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나는 탄탄한 토대위에 수천 수만명의 손을 빌고 그들의 눈물을 이겨 쌓아올린 수 십조의 황금탑보다 한 뼘의 땅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절단기에 한마디가 잘려나간 옹이진 손으로 마련한 서른평 아파트가 더 빛나고 귀하기만 하다 먼지묻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집 앞 구멍가게에서 열무 안주로 들이키던 막걸리 한 사발의 행복이 지폐다발을 안긴 딸 또래의 젊은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누렸던 쾌락보다 결코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스미디어마다 앞다투어 윤색하고 칭송해마지않는 재벌 총수의 삶보다 신문 지면에 기사 한줄 안올라가지만 투박하고 진실했던 한 목수의 삶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고 아쉬워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