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by 문성훈

"당신은 너무나 위대한 지휘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동료가 아니라 악기로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음악을 하는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뛰어난 지휘자이자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이탈리아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리카르도 무티(1941~ )는 2005년 어느날 800명 단원의 서명이 담긴 이 편지를 받고 사퇴한다.
그는 세계 최고의 연봉을 자랑하며 최고 수준의 연주를 들려주는 지휘자였다. 하지만 단원들을 파트너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의 자율성이나 창의성을 무시하며 자신만의 음악스타일을 고집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와 대비되는 지휘자가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이다.
단원들의 자율성과 음악적 해석을 존중하고 기꺼이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단원들을 거느리는 부하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고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게 북돋운 지휘자였다.
단원들은 "내가 뮤지션이 되고싶어 한 이유를 상기시켜 주었고 나에게 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며 그를 칭송했고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그를 추억했다.
오케스트라의 단원들도 연주자이기 전에 인간이다. 자신의 일을 통해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없게 하는 리더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인간은 없다. 자존감이 뭉개진 채 의욕적으로 연주할 사람도 없거니와 영혼없이 리더만 추종하는 사람에게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던 조직의 수장이 충성했던 대상은 결국 조직이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당시에는 누구도 "그렇다면 무엇에 충성하는가?"라고 묻지않았다. 각자 자의적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정작 내가 궁금한 건 조직원들이 지금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하는 것이다.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조직을 지키려는 믿음직한 리더로 여길지 아니면 그들의 자긍심마저 무너뜨릴지 모르는 위험한 인물로 인식하는지 말이다.
아무튼 이제껏 보여줬던 그들의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고 안타깝게도 어떤 식으로건 조직원의 서명이 담긴 편지를 전달하는 일은 없어보인다. 객석이 비고 마침내 그들이 설 무대가 없어진 후에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를 조율해 선율을 만드는 사람이다.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00명 이상의 연주자를 통솔하는 리더다. 카리스마와 통제로 이끌든 소통과 자율성으로 완성시키든 청중은 아름다운 음악을 듣기를 원한다.
단원을 선발하듯 각료를 임명해서 국정을 이끄는 리더가 대통령이다. 곡 해석과 기법이 천양지차인 두 사람을 같은 악기 연주자로 뽑아놓고서 불협화음이 나게 하는 것은 훌륭한 지휘자의 모습이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건 명료하고 완벽한 곡 해석과 지휘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길 바라는 것이다.
청중이 편을 갈라 연주자 중 한명을 지목해서 무대에서 끌어내리려고 아우성인 상황은 지휘자의 무능과 부덕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소음이 일상화되면 아무리 좋은 연주도 들리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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